사회 사회일반

[유커와 한중페리선 32시간 동행 르포] "한국문화 느끼고 싶었는데 쇼핑 밖에 기억 남는게 없네요"

선상 매점·면세점까지 발디딜 틈 없이 북적

시간 걸려도 배타는 이유 "비용 싸고 짐 많이 실어서"

유커들이 지난 10월12일 인천항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고 있다. 긴 이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요금과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여객선을 이용하는 유커들이 많다.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물밀듯 몰려오고 있다. 올 한 해 6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대비 38%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난생처음 한국을 방문한 사람이 무려 74%(2013년 기준)이며 초회 방문자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첫 한국 경험은 어땠을까. 인상이 좋았다면 재방문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또 귀국해 친지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유커의 흐름은 바뀔 수 있다. 본지는 인천에서 옌타이(煙臺)를 오가는 한중 페리선 향설란호를 타고 유커와 밀착 동행했다. 배편은 비행기와 달리 편도 16시간, 왕복 32시간의 긴 여정이다. 시계열 방식으로 유커와의 동행기를 담아본다.

방한길-10월7일 중국 국경절 연휴 마지막 날. 여행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유커들 덕에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은 북적북적했다. 캐리어와 양손 가득 면세점 쇼핑백을 든 그들은 출국장 앞에서 수속을 대기하며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출국 수속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중국 도착 18시간 전) 모두가 첫 한국 여행이었다

오후5시 중국 옌타이로 향하는 한중 페리 향설란호에 유커들이 몸을 실었다. 이날 옌타이 편에 탑승한 유커는 140여명. 일부는 한국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쉬운지 짐을 풀지도 않고 갑판 위로 나와 석양이 기우는 인천항을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옌타이시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왕샤오씨는 "가족 모두 첫 한국 여행인데 같은 여행사를 통해 온 분들 20명도 처음 한국에 왔다"며 "거리나 시설물들이 모두 깨끗해서 확실히 발전된 도시라고 느꼈고 특히 치안이 잘돼 있어 두 딸과 아내와 함께 마음 편히 놀다 왔다"고 말했다. 오후7시 향설란호는 인천항을 떠났다.

#(중국 도착 16시간 전) 선상 면세점 발 디딜 틈 없어

식사시간이 끝나자 선상 매점과 면세점이 문을 열고 승객들을 맞았다. 담배 매대 앞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화장품 코너 내 팩 판매대에도 손님들의 손길이 멈추지 않았다. 면세점을 구경하는 승객들은 한눈에 봐도 연령대가 높았다. 50대 이상이 상당수였다. 딸과 함께 3박5일 일정으로 서울을 여행했다는 한 부부는 "생업에 바빠 그동안 해외 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다닐 겨를이 없었다"면서 "나이가 있어 첫 (해외) 여행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단체에 우리 또래들이 많아 즐겁게 다녀왔다"고 말했다.


# (중국 도착 4시간 전) "쇼핑밖에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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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고 불통 상태였던 휴대폰에 중국 쪽 통신이 잡히자 승객들의 입에서는 '도착이구나' 하는 기쁨과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감 만족의 한국 여행이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온 덩잉시씨는 4박6일 일정 동안 제주도와 서울을 관광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던 성산일출봉"이라면서 "서울에서는 동대문과 명동을 방문했는데 주로 쇼핑을 해서 기억에 남기보다는 그저 (쇼핑하기) 편리했다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온 첸후쯔씨 역시 "한국적 문화와 풍경을 느끼고 싶어 왔는데 (여행사에서) 가는 곳마다 거리에 쇼핑하는 중국인들이 150%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았다"면서 "다음에 또 올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도시나 이번에 가보지 못한 서울 내 지역 명소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귀국길-10월11일 토요일. 국경절 연휴가 끝나 옌타이 항은 한산했지만 주말을 끼고 한국 여행을 떠나는 유커 50여명이 배에 올랐다. 잊은 물건은 없는지 수속을 하는 중에도 꼼꼼히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소 상기되고 긴장된 표정으로 배를 둘러봤다.

#(한국 도착 18시간 전) "긴장과 설렘"

중국 옌타이로 들어오는 배편과 다르게 인천항으로 향하는 선내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식사를 마친 유커들은 낯선 배를 둘러보기가 어색했던지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매점과 면세점이 개방됐지만 둘러보는 유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4일 결혼식을 올리고 휴가로 아내와 함께 왔다는 자이신싱씨는 "그렇게 작은 나라(한국)에서 아시안게임·올림픽·월드컵까지 개최하고 중국과 일본에 한류로 영향을 준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봐온 서울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무척 신 났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도 줄곧 '오빠'를 외치며 멋진 패션 감각을 지닌 한국인들을 볼 생각에 떨린다고 말했다.

#(한국 도착 4시간 전)유커가 배를 타는 이유… '비용 싸고 물건 많이 실을 수 있어'

동이 트고 아침식사를 마친 인천행 유커들이 드디어 방을 빠져나와 선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이 다소 해소된 듯 배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지평선을 배경으로 갑판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비행기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곳을 왜 16시간 동안 배를 탈까. 모쯔챠오씨는 "여행사를 통해 배편을 이용하면 2,380위안(한화 약 41만원)으로 4박6일 서울~제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데 비행기를 이용하면 2~3배 정도 비싸다"면서 "중국 국내에서 10시간 이동은 기본이기 때문에 이동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이신싱씨 역시 "비행기는 한 사람당 소유할 수 있는 물품 무게가 20kg으로 제한돼 있지만 배는 1인당 60kg까지"라고 덧붙였다.

/향설란호=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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