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증권업계의 ‘밥그릇 다툼’이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일임형종합자산관리계좌(CMA) 신용카드에 이어 지급 결제 업무로까지 확대되는 형국이다.
증권사들은 이달 3일부터 CMA를 통해 은행의 고유 영역이었던 지급 결제 업무까지 취급한다. 소액 지급 결제가 허용됨으로써 은행에서만 가능했던 어음이나 수표의 결제, 지로나 공과금 자동이체,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한 송금 등을 증권사에서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은행연합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증권사의 지급 결제 참여에 따른 효과가 비관적”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당국도 지난달 “CMA 신용카드에 대해 증권사들이 불법 마케팅에 나설 것을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며 과열 경쟁을 미리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증권사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은행의 우려와는 달리 금융업 전체로 보면 신용카드나 지급 결제 업무가 이미 포화된 상황이라 ‘레드오션’으로 여긴다. 단지 증권업 내부로 시야를 좁히면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만큼 ‘블루오션’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증권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급 결제 업무나 CMA 신용카드의 경우 은행들이 이미 이 분야에서 탄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데다 시장도 포화 상태에 이른 만큼 빠르게 시장잠식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은행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엄살’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미 CMA 계좌의 경우 총 잔액과 계좌수가 각각 38조5,000억원, 876만개로 늘어났기 때문에 은행들로서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은행이든 증권사든 중요한 것은 ‘고객 편의’와 ‘시장 질서’다. 은행 계좌뿐 아니라 CMA 서비스를 통해서도 보다 싼 수수료에 다양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면 으레 등장하는 ‘과열 마케팅’ 등에 따른 시장 질서의 훼손 역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