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회계사연맹(CAPA) 이사회와 연차총회가 열렸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국제회계사연맹(IFAC) 평의원회가 열렸다. 이 두 국제회의에서 다뤄진 주된 의제는 기업회계기준과 공인회계사 관련 제도의 세계 통일이었다.
같은 경제 현상을 두고 나라마다 각기 다른 ‘회계기준’이라는 잣대로 측정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아무런 실익 없이 불편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회계기준을 쓰지 않는 나라는 회계의 불투명성이 높은 나라로 분류하게 됐다.
기업의 경제적 실체는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통일하고 규정화한 것이 ‘회계기준’인데 과거에는 나라마다 다른 규정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결과적으로 같은 경제 현상을 두고 나라마다 다른 잣대를 가지고 측정해왔던 셈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해 일찍이 지난 73년에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C)를 창설하고 국제적으로 적용할 단일 회계기준, 즉 국제회계기준을 제정하게 됐다. 초창기에는 그 내용이 엉성해 별로 보급되지 않다가 최근에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정교한 회계기준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유럽연합(EU) 지역에서는 이 지역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를 올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작성하도록 했다. 그 결과 EUㆍ호주ㆍ홍콩ㆍ싱가포르를 비롯한 100여개 국가에서 국제회계기준을 자국의 기준으로 채택하게 됐다. 미국도 오는 2007년부터 국제회계기준을 자국에 상장하는 회사의 회계기준으로 인정하기로 했으며 중국마저도 통일화 작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최근에 발표했다.
흔히 회계의 투명성을 말할 때 분식회계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회계투명성은 개별회사에 국한되는 분식회계보다도 그 나라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회계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최악으로 평가됐는데 그 주된 요인이 우리나라에서만 적용되는 특이한 회계기준과 관행에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북아 금융 허브’의 꿈을 접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내용 기업회계기준을 고집하고 있는 한 이 꿈은 여지없이 접히고 말 것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회계기준을 배워 우리나라 기업의 재무서류를 이해하게 하고 외국 기업의 재무서류를 한국 기준에 맞춰 다시 작성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우리나라를 상대할 것인가.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 1년간 재무서류의 국제적 공시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XBRL의 도입을 적극 추진해 내년부터는 이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적어도 숫자의 정확성과 이용의 편이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의 생성 기초인 회계기준이 국내용이라서 국제적으로 널리 활용되기에는 걸림돌이 많을 것이다.
재무보고서를 국제회계기준으로 작성하고 이를 XBRL 형식으로 보고하게 하면 회계 부문에서는 동북아 금융 허브의 기본이 갖춰지는 셈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국내용 회계기준을 다른 나라들처럼 국제기준으로 과감히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호주는 당장 바꾸었고 뉴질랜드는 2007년부터, 캐나다는 2010년부터 바꾸겠다고 선언했는데 우리는 왜 못하는 것인가. 혹시 일본처럼 국력이 강해서 버틸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배짱인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그 주된 이유가 회계기준 전환에 따른 관련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실은 아니겠지만 기준제정권자가 제정권을 잃는 데 대한 상실감도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기준제정권이 국제회계기준위원회로 넘어간다고 해서 우리나라 회계기준제정기구의 역할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국제기준을 과감히 수용하되 한편으로는 국제회계기준제정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 우리 회계기준을 국제기준에 반영해 많이 채택되도록 한다면 더욱 당당하고 오히려 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입 규모가 5,000억달러에 달하는 교역 대국이다. 그에 걸맞은 위신을 지키면서 세계화된 경제에서 따돌림을 면하자면 국제 조류에 맞춰 하루 속히 국제회계기준이 국내에서도 통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경제 속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억울하게 회계불투명 기업으로 분류돼 국제적으로 더 이상 디스카운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