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살리기­대응과 전략 특별대담(원로에게 듣는다)

◎정부리더십 불재가 위기 자초/구조조정·체질개선 서둘러야/고성장 보다 삶의질 개선에 초점맞춰야/산업중심도 첨단부품·소재분야 전환을/21C는 소량다품종시대 중소기업이 유리할것/비관만 하지 말고 스스로 활로 모색을/잇따른 기업 부도사태 경제 취약점 노출된것/재정긴축·금융완화로 개방속도 조절해야/한은독립·금융감독개편 만만찮은 갈등과 물의/재벌 은행경영 참여도 반론 적지않아경제가 어렵다. 진짜 총체적인 위기다. 문민정부 출범 후 4년6개월동안 5만3천개의 기업이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부도금액은 53조원. 지난 30년동안 쓰러진 기업보다 많다. 국제수지 적자는 연 2백억달러 안팎. 총 외채는 1천억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다. 오늘의 위기는 경기순환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위기다. 또 외국경제는 모두 잘나가고 있는데 유독 우리경제만 어렵다. 게다가 기업마인드가 크게 위축되어 있고 경제전망도 매우 불투명하다. 한국경제는 어떻게 하면 오늘의 위기에서 슬기롭게 탈출할 수 있을까. 서울경제신문은 사계의 권위자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박승 중앙대 교수(전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를 초청, 특별대담을 통해 경제살리기를 위한 대응자세와 전략을 모색했다.<편집자주> □대담 남덕우 전 국무총리·산학협동재단 이사장 박승 전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중앙대 교수 사회:박병윤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 ◇장소:롯데호텔 메트로폴리탄 회의실 ◇때:1997년 7월26일 ▲박병윤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올들어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지난해 이맘때 가진 대담 자리에서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충분히 예견된 사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뚜렷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않아 결국 오늘과 같은 총체적 위기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두 분께서는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박승 중앙대교수=지난해 정부는 경기가 연착륙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경제 위기에 대해선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예측력과 중장기적 대응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불황에는 세가지 요인, 즉 구조적·경기순환적·심리적 요인이 작용합니다. 올초 한보사태로 정치가 혼란에 빠지고 정부 리더십이 약화되자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제2금융권이 자금을 제대로 돌리지 않아 기업들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정국불안으로 인한 심리적 작용이 경제상황을 악화시킨 것입니다. 이같은 양상은 결국 재계 순위 8위인 기아그룹이 부도유예 처리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중장기 대처능력 미비 ▲박교수=현정부는 국가운영에 대한 장기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10년 또는, 1백년 후 우리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없습니다. 결국 모든 경제정책이 즉흥적인 대증요법에 그치고, 정책당국은 실험적 시행착오만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국제수지 적자폭이 현정부들어 해마다 2배 이상씩 늘었는데도 수수방관해온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박대표=지금의 경제위기가 경기순환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 침체현상이 아니라 정부가 적절한 정책대응을 못한데 따르는 구조적 문제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야겠습니까. ▲남전총리=생각해보면 구조조정 문제만 해도 이미 80년대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실행속도가 너무 늦은게 문제입니다. 교통난해소 문제도 진행이 되고는 있으나 그 속도가 더디고, 과학기술개발도 총체적 시스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가정책도 아직 대증요법적인 정책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바로 금융개혁입니다. 금융개혁에 대해선 이미 안이 나와 있는 상태지만 정권말기라서 어떻게 진행될지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박교수=현재 당면한 위기는 정치, 경제, 의식구조, 리더십이 얽힌 복합형태의 위기입니다. 따라서 타개대책도 정치·사회 문제까지 망라한 종합적이고 장기구조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핍·감량에 나서야 하며 장기적으론 정치, 교육, 노사, 환경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한 근본적 체질개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박대표=최근 상황에서 특이한 점은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기는 오랜 침체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와 동조화현상을 나타냈던 것과는 반대입니다. 이때문에 적절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데, 경제운용 방향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겠습니까. ▲남전총리=구조적 취약점때문에 세계경제가 호조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불황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 경제상황에 따른 플러스 영향을 전혀 안 받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박교수=맞습니다. 그것은 경제위기의 책임이 다름아닌 우리 자신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경제는 대기만성형이 아닌 조숙조로형으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개발초기엔 성공적이다가 정작 개방체제가 시작되는 지금부터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데는 우리의 성장비용이 너무 빨리 상승한 영향이 큽니다. 임금, 물류비, 교육비, 환경비, 주거비 등의 급등으로 인해 경제가 10%포인트 성장할 때마다 8∼9%포인트는 경제를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물가상승으로 인해 소득이 늘어나도 생활수준은 오히려 후퇴, 조숙조로형의 특징인 고소득·고물가·저생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젠 정책 초점을 소득이나 성장보다 물가인하와 공공재 공급, 삶의 질 개선 등 의식과 생활의 합리화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환율·금리 연계돼야 ▲박대표=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가장 시급히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부문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박교수=물론 각 부문에 대해 동시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의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관리능력을 발휘하여 올바른 방향을 제시, 이를 통해 근로자나 기업, 가계 등 각계의 욕구를 새로운 경제활동 방향에 맞도록 조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박대표=동감입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대외여건에 의존도가 높은만큼 환율조정 없이는 경제의 어려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는 엔·달러 환율 변화에 상관없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일부에선 정부가 환율을 조정하여 기업의 구조조정 여력을 축적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남전총리=중요한 것은 시장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율도 이제는 시장실세에 맞게 변동해야 하며, 환율과 금리가 서로 연계돼야 합니다. 우선 금융개혁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이 자율화되고 경쟁원리가 도입돼야 시장원칙하에 금리와 환율이 정해지는 메커니즘이 작용할 것입니다. ▲박교수=최근 엔저현상이 엔고현상으로 바뀌어 우리 경제 구조조정 과정의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엔고덕분에 경제가 조금 나아진 것을 마치 우리의 근본적 체질이 개선돼 산업이 살아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환율인상을 경기부양책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금리와 환율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박대표=정부는 한편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도산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92년부터 시작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현상때부터 부도사태는 이미 예견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설되는 중소기업수가 도산 기업수보다 많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의 정부대응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지난해말 이후 대기업들마저 부도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이를 방치만 하고 있어야겠습니까. ▲남전총리=기업도산에 대한 대책도 시장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부도방지협약이 응급조치로서 불가피한 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원칙를 중시해야 합니다. 법정관리의 방법이 오히려 나을지 모릅니다. 최근 중소기업 부도사태에는 무엇보다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어수선해지자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종금사나 은행이 갑작스레 어음을 회수, 사회적 공기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유망한 기업마저 도산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은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부도의 또 다른 원인은 국내기업들이 기존에 생산하던 재래상품이 경쟁력을 잃은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으로 선진국은 첨단·기술산업에, 후진국은 재래산업에 치중하는 가운데 그 중간에 위치한 우리는 첨단산업에 필요한 부품·소재산업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벤처산업육성도 시급 이러한 요인들을 극복하고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해선 4가지 문제점이 해결돼야 합니다. 첫째,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분위기속에 침체된 기업의욕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둘째, 외국정보 수집과 교육을 통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합니다. 셋째, 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이 유기적으로 체계화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이 육성돼야 합니다. ▲박교수=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부도사태는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의 취약점이 노출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우리 경제는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급진적으로 개방체제로 전환됐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기업도산이 심각한 수준으로 파급된 것입니다. 이번 부도사태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어떤 점에서는 필연적인 현상인 셈입니다. 이제와서 이러한 부도사태를 정부가 당장 막아보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정부는 재정을 긴축시키고 금융은 완화하여 두 부문의 정책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개방의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또 예측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도산 사태에 대하여 정부가 적극 대응할 필요는 있으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중소기업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 경제의 대부분을 재벌들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일부 금융지원이나 업종제한만으로는 중소기업을 육성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기술과 자본의 중심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양해야합니다. 향후 경제의 소프트화, 경박단소화 추세에 맞춰 우리 산업조직을 대기업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전총리=지적하신대로 다가올 21세기는 중소기업에 유리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호가 더욱 까다로워지고 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획일적 대량생산은 점점 설 땅을 잃고, 소량다품종 생산을 특징으로 한 중소기업이 유리한 입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우위를 차지해온 건설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건설자재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건설에 필요한 각 업무를 개개의 중소기업이 맡고, 이 중소기업들이 네트워크화하여 하나의 대기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즉 개개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각 부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제는 이미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내 중소기업도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활로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박대표=옳으신 지적입니다. 그러나 요즘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데는 구조적 문제뿐 아니라 침체된 경기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엔 향후 경기가 저점을 지난 후에도 상승세로 돌아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이른바 L자형 정체현상을 나타낼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정부관계자나 민간연구소가 하반기중 경기회복을 전망하고는 있지만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고성장시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많은데 최근 경기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남전총리=최근 경기는 L자형을 그리고 있다고 봅니다. 바닥을 친 후에도 국제수지때문에 예전과 같은 고성장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올해 성장률은 6%정도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 이것도 국제수준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성장에 치중하기보다는 국제수지를 개선하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회복 성급한 판단 ▲박교수=엔화 강세에 금리 하락과 총통화 팽창이 가세하고 시중자금이 한때 남아돌자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었다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성급한 생각입니다. 금리하락은 기업들의 투자위축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복합적·구조적인 것이므로 향후 경기진행은 L자형이나 U자형이 될 것입니다. 우선 향후 3년간은 허리띠를 졸라 5%수준의 낮은 성장을 지향해야 우리 경제에 만연한 거품(과잉기대, 과잉욕구, 과소비, 과투자)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참다운 자생력이 생기는 것은 그 후에야 가능하리라 봅니다. 90년대 초 일본과 한국은 똑같이 거품경제로 인한 고통을 겪은 바 있습니다. 일본은 그후 5년동안 감량정책을 추진, 지난해부터 정상적인 경기회복에 접어든 반면 우리나라는 93년부터 엔고와 금리하락이 지속되자 우리 경쟁력이 회복된 것으로 착각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는 현재 상황을 신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박대표=최근 국제수지가 다소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개선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정부가 허물어져가는 경제를 살릴만한 관리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정책부재인 것입니다. 정책당국에 경제살리기를 위한 처방을 말씀해주십시오. ▲남전총리=무엇보다 정부정책에 일관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부는 경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방심말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박교수=사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초점은 경제체질과 잠재력 향상,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 경쟁력 회복이라는 중심문제로부터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부 리더십의 주된 실패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책수단도 잘못 선택한 때가 많습니다. 가령 집값이 오른다고 복덕방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거나 과외비를 줄이려고 학원대상 세무사찰을 하는 정책 등은 바람직하지 못한 접근법입니다. ▲박대표=최근 정부 경제팀은 금융개혁, 기업경영체질 개선, 21세기 국가과제 제시 등 각종 정책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현 정부가 다가오는 대선을 의식해서 새 정책을 떠벌리는 것은 시기상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정권교체기의 바람직한 경제운용 방향을 제시해주십시오. ○정권말기 할일은 해야 ▲남전총리=정권 말기라도 할 일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연히 효과도 못 볼 정책안을 발표해서 기업들의 불안을 고조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행될 일도 아닌데 엄포부터 놓으면 기업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교수=정부가 추진해야 할 여러 사안들 중에는 임기에 관련없이 시행돼야 할 일이 있고 임기를 고려해 자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국민생활이나 교육, 환경 등 국론분열의 우려가 없는 정책은 임기와 무관하게 시행돼야겠지만 국론분열의 소지가 있는 사항에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정권 말기에 실컷 추진하던 일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백지화되는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박대표=정부가 추진중인 경제정책가운데 중앙은행 독립과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만만찮은 물의를 빚었습니다. 은행 주인찾기와 관련, 5대재벌 및 기관투자가들의 은행경영 참여 허용에 대해서도 반론이 적지않은 상황입니다. 금융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요. ▲남전총리=저는 금융개혁안중에서도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감독기관 통합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 세계적 추세를 들 수 있습니다. 일본이 최근 감독원을 통합했으며 독일, 영국, 미국에서도 최근 이 사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차피 21세기엔 보험·증권·은행간 장벽이 사라질 것인데 감독기관이 따로 존재할 경우 여러 애로사항이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금융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선 각 금융기능을 유기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아주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마는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또다른 금융스캔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한국은행이 감독기능때문에 깊이 말려들면 해외금융시장에서 우리 중앙은행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므로 한은의 책임을 덜어줄 별도의 감독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부안은 다소 손질이 됐지만 적잖은 문제가 있습니다. 물가인상에 따른 책임을 한은총재에게 떠넘기려는 시도는 뒤늦게나마 수정됐지만 여전히 한은을 비롯한 관련 당사자의 반발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보다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박교수=우선은 금융개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합리성을 상실한 밥그릇싸움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부처 이기주의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금융개혁위원회를 설립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습니다. 금융개혁안도 당초 금개위가 마련한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부가 제출한 개혁안은 아직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특히 중앙은행과 은행감독에 관한 사항은 국회에서 금개위 원안으로 되돌아가 이것을 중심으로 심의 의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향후 남북과계도 관심 ▲박대표=금융개혁외에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북한문제입니다. 일부 해외언론은 북한 체제 붕괴가 임박했다는 전망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향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시는지요. 또 정부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정책 접근방향을 제시해주십시오. ▲남전총리=향후 북한 동향에 대한 몇가지 시나리오에 대해선 각각의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가지 시나리오란 크게 △자멸 △점진적 개혁·개방 △무력도발 세가지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내부개혁에 나서서 남한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시장체제로 전환된다면 더없이 바람직하겠지만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국제수지를 튼튼히 개선하여 기본적으로 통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박교수=앞으로 5년간이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입니다. 만일 갑작스레 통일이 임박한다든지하는 큰 변화가 발생할 경우 우리의 경제, 사회, 정치는 엄청난 충격과 환경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특히 통일에 드는 비용과 산업재배치, 사회간접자본 개발, 노동력 흡수 등 수많은 경제 문제는 남한측의 부담으로 귀착될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회복, 국제수지를 흑자로 전환시키는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축증대나 소비억제 등은 경제살리기 뿐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도 절박한 과제임을 국민 모두가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박대표=오랜 시간동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정리=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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