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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2일] '키코' 판매 은행 면책은 부당
이건호 (KDI 교수ㆍ국제정책대학원)
법원이 지난 8월에 이어 최근에도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계약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사건을 기각했다. 재판부가 밝힌 기각 이유는 "은행이 키코 계약을 권하면서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다소 미흡한 면이 있었다고 해서 고객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며 업체가 자유의사에 따라 계약을 맺은 만큼 효력을 정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법률 비전공자가 재판부의 법적 판단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아직 판결을 기다리는 유사 소송들이 남아 있기에 적어도 재판부가 제시한 논리의 부당성만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금융상품 정보 충분히 알려야
우선 재판부는 키코 계약의 경우 금융기관인 은행과 비금융기관인 일반기업 간의 거래라는 점에서 거래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체결하는 일반적 계약과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적인 금융관련 지식을 요구하는 파생상품 계약의 경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 정도가 금융기관과 일반기업 간에 같을 수 없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설명 의무를 매우 엄격하게 부과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법률에 따르면 키코 계약의 경우 단순한 효력정지에 그치지 않고 은행이 손해배상 책임까지 져야 할 정도로 중대한 고객보호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2007년 8월 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속칭 자통법)' 제47조는 금융기관이 금융투자상품의 내용, 투자에 따르는 위험 등을 일반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며 서명ㆍ녹취 등의 방법으로 이해했음을 확인받도록 하고 있다. 제48조는 금융기관이 이를 위반해 일반투자자가 손해를 본 경우 금융기관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다. 은행의 설명이 미흡했거나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고객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고객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이로 인한 고객의 손해는 당연히 은행이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통법 46조는 금융기관이 투자를 권유할 때 투자목적ㆍ재산상황ㆍ투자경험 등에 비춰 투자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투자 권유를 하지 말아야 하며 투자 권유를 하지 않고 파생상품을 판매만 하는 경우에도 해당상품이 투자자에게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키코는 상품구조상 원ㆍ달러 환율이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하락하면 기업이 다소 이익을 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환율 상승분의 2배에 이르는 손실을 무한대까지 부담해야 하는 극히 위험하고 투기성이 큰 상품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일반기업을 상대로 키코 투자를 권유해서는 안 되며 기업이 투자를 원하더라도 말려야 한다. 은행이 투자 권유 혹은 계약 체결과정에서 투자 위험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만류하지 않았다면 기업이 자유의사로 계약을 맺었다는 것만으로 은행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은행편만 드는 금융당국에 유감
자통법은 시행시점이 공포 후 1년6개월로 명시돼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키코 계약은 자통법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체결됐다. 자통법 시행 이전에는 고객보호 의무 내용이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이번 법원의 판단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자통법이 이미 제정됐고 단순히 시행시점만 도래하지 않은 상황을 은행들이 악용한 것이라면 도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키코를 둘러싼 그동안의 법정 다툼을 지켜보면 은행들은 초지일관 고객보호 의무를 외면했고 감독당국은 철저히 은행 편을 들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매우 유감스런 모습이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감독당국은 고객보호 의무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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