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리스타트업 코리아] 관료 바로세워야 경제도 산다

업무량 급증했지만 권한 줄고 책임만 늘어<br>심부름꾼 치부 말고 정책 동반자로 존중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해외에서 열린 경제각료급 회의에 참석했던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는 인접한 자리에 앉은 어느 신흥국 재무관료와 중앙은행 관계자가 유독 오순도순 소곤거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 우리 측 관계자는 유심히 그들을 살펴봤다가 일순 당황했다고 한다. 그들이 노트북처럼 생긴 작은 기기 한 대를 함께 조작하면서 소리를 끈 채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프닝의 주인공들이 속한 나라는 한때 엘리트 관료들의 주도로 눈부신 고도성장을 했던 곳이다. 그러나 후진적 정치와 관료부패, 대내외 위기 속에 경제ㆍ국가재정이 무너져 이제는 신흥국들의 반면교사로 종종 인용되고는 한다. 해프닝을 목격한 우리 측 관계자는 관료가 무너지면 나라 경제도 허물어진다는 교훈을 새삼 각인했다고 한다.

지난 5년간 우리 경제는 연이은 대내외 위기 속에서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계와 기업이 열심히 일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재빨리 위기 징후를 감지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편 정부의 공도 매우 컸다.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 경제관료들의 어깨는 축 처져 있다. 고도성장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경제를 이끈다"는 자부심은 희석되는 분위기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경제부처의 업무량은 급증했지만 권한은 줄고 책임만 늘어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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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곳이 기획재정부 산하 예산실이다. 한때 예산관료라면 정부 엘리트 관료 중에서도 선택된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선망의 지위였다. 그러나 요즘 재정부 예산실은 해가 갈수록 커지는 구인난으로 고민 중이라고 한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예산실은 한해 내내 끊이지는 않는 격무에 시달리지만 예산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갔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해도 느끼는 자부심이 예전만 못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추세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격무 보직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물론 이는 위업보다는 웰빙을 선호하고 경기불황 속에 도전ㆍ모험보다는 안정된 직업을 택하는 등 보수화한 세태가 관가에 스며든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관료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보다는 책임만 강요하고 국민적 카타르시스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포퓰리즘적 정치ㆍ여론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과거 통치자들의 잘못도 일조하고 있다. 정권ㆍ정부가 바뀔 때마다 통치자가 관료를 정책의 동반자ㆍ파트너로 대우하기보다는 자신의 입맛대로 지시를 시행하는 심부름꾼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이로 인해 관료들은 소신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 즉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질책을 감내해야 했다. 이 같은 세간의 질책은 정치바람을 타는 일부 관료들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념을 지켜온 상당수 관료들에게는 모욕과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 수반이 경제를 살리려면 먼저 관료, 특히 경제관료들을 하수인이 아닌 정책의 동반자로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조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점점 분산되는 권한으로 경제부처 간 의견이 틀어지고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조율해주는 정책조율력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새 정부의 리더십으로 꼽힌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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