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뒷통수 맞은 IT강국

발전소가 고장났다고 치자. 문제가 많지만 치명적인 상황은 아니다. 급하면 촛불을 켜면 된다. 웬만한 공장은 예비발전기를 갖추고 있다. 전기가 당장 끊겨도 응급대처가 가능하다. 적어도 암흑세상은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업과 가정에서 제 아무리 최첨단의 컴퓨터를 갖고 있어도 인터넷이 끊어지면 방법이 없다. 촛불이나 예비발전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광활하고도 치밀한 네크워크의 연결인 인터넷의 단절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암흑세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전국적인 인터넷 불통사태가 복구됐다고 하지만 불편함은 여전하다. 완전한 복구까지 얼마가 더 걸릴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인터넷 대란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타격은 우리가 제일 크다. 한국은 사이버주식거래에서 인터넷 홈쇼핑, 인터넷 뱅킹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다. 정부의 조달과 결제도 올해부터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가 통째로 대책없는 암흑을 맞은 꼴이다. 사상초유의 사태다. 국가 전체의 인터넷 네트워크가 불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가의 전산시스템과 복잡한 전산네크워트로 채워져 있던 국제금융센터의 중심, 미국 무역센터 빌딩이 9.11테러로 무너지고 펜타곤(미국 국방부 건물)이 피습돼도 인터넷은 살아 움직였다.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도 온전했던 인터넷이 한국에서는 마비됐다는 사실은 `과연 우리가 IT강국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번 인터넷 대란으로 한국은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후 온 나라가 암흑에 쌓인 첫번째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잘못은 없었는지 책임규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가 이미 지난해 5월부터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만약 제2, 제3의 인터넷대란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경제성장을 이끌 새로운 엔진이라는 IT산업이 흔들린다면 우리 경제의 구조는 10년전으로 후퇴할지도 모른다.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이번 사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요구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진정한 IT강국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암흑과 퇴행의 반복구조에 접어드느냐가 이번 사태의 처리에 달렸다. <권홍우(경제부 차장)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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