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박은관 시몬느 회장

가방제조 외길 인생… 명품 브랜드 한국 장인정신 담았죠



버버리·코치·토리버치 유명 핸드백 ODM 제작

미국시장 30% 점유 등 연 매출 6000억 급성장


직원 경력 합치면 3500년… 전문성·품질 자신 있어요


안양천을 따라 10여개 중소 공장이 들어서 있는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이곳 사람들에게는 회사 이름은 생소해도 건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몬느'라는 회사가 있다. 세월의 때가 묻은 잿빛 외관에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계단식 연못과 눈 덮인 가로수가 어우러져 흡사 회사 건물이라기보다는 교외 갤러리의 풍경에 가깝다.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내부에 있다. 층층이, 심지어 화장실에도 예술작품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사무실마다 달려 있는 테라스에도 예술작품과 함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직원들의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압권은 3층의 회장 집무실. 풀빛 스카프를 멋스럽게 맨 노신사가 "시몬느 박은관 회장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역시나 가방을 만드는 제조기업 CEO보다는 갤러리 관장이 어울릴 법한 풍모였다. 6일 찾아간 박은관(58·사진) 회장의 집무실 역시 온갖 그림과 예술 관련 서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는 버버리·코치 등 이름을 대면 바로 알 법한 해외 명품 브랜드의 여자 핸드백 20여개가 깔려 있었다.

시몬느는 버버리·코치·DKNY·마이클코어스·마크제이콥스·토리버치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을 만든다. 미국 시장의 30%, 세계 시장의 8%를 점유하는 핸드백 제조자개발생산(ODM) 1위 업체다. 박 회장은 국내에는 명품 브랜드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인 지난 1987년 이 회사를 설립했다.

"수출업에 대한 꿈이 컸죠. 그래서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원양어업 회사 입사를 거절하고 핸드백 제조업체 '청산'에 입사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뛰어난 봉제기술을 바탕으로 가방을 해외에 수출하던 그 회사 덕에 이탈리아부터 미국까지 줄기차게 해외출장을 다녔죠. 근데 이탈리아에서 만난 바이어가 '이제 이탈리아에는 20~30대 핸드백 마이스터가 없다. 이탈리아의 명품사업이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당시 한국에서도 봉제산업은 사양산업으로 꼽혔지만 고급화와 차별화를 통해 시몬느는 창사 이래 높은 수익성과 성장세를 이어갔다.

박 회장은 "남들이 깔아놓은 철로에 남들이 만든 기차를 타고 가면 사양산업이지만 우리가 만든 철길에 우리가 만든 기차를 타고 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창업 직후 박 회장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고집하던 명품 브랜드 도나카란을 설득해 최초로 '메이드 인 아시아' 가방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도나카란이 같은 품질의 제품을 4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자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시몬느를 찾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해외 시장을 바라본 박 회장답게 해외 생산기지 마련도 발빠르게 이뤄졌다. 늘어나는 주문량에 비해 국내에서는 바이어들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대규모 부지를 마련하고 인력을 확충하기 어려웠다. 또 생산기지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줄이고 가격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다.

물론 처음으로 중국 광저우에 공장을 지었던 1992년에는 명품 브랜드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대한 거부감 탓이었다.

박 회장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중국에서 만든 제품도 품질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순조롭게 중국 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제 국내 공장은 샘플 개발 기능만 맡고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에서 2만여명의 근로자들이 한 해 1,200만개 이상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도 밀려드는 주문에 베트남에 2개 공장을 추가로 오픈하며 생산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인터뷰 도중 박 회장과 함께 4층 연구개발(R&D)센터를 찾았다. 평균 경력 30년에 가까운 7명의 장인들이 가죽을 재단하고 미싱으로 박음질을 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우리 직원 310명의 핸드백에 대한 경험치를 합쳤더니 3,500년에 달하더라"며 "이런 전문성 덕에 현대에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 브랜드인 마이클코어스·마크제이콥스 등의 핸드백 론칭을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몬느가 소재·디자인 개발부터 각 브랜드 정체성에 맞는 제품 기획, 품질 관리까지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 서비스 컴퍼니'에서 나아가 '브랜드 론칭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더하게 된 것도 이들 브랜드와 함께하면서부터다.

시몬느의 수출실적이 2011년 4억4,000만달러에서 올해 7억달러로 늘며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는 비결 역시 이들 브랜드의 성장이다.

심지어 지난해 마이클코어스 기업공개(IPO) 직전 지분투자 기회를 얻으면서 시몬느는 상장 후 억 단위의 매매차익을 얻기도 했다. 당시 지분투자를 제안하면서 마이클코어스 관계자가 전한 "우리의 현재는 시몬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We owe you a lot what we are today)"는 말을 박 회장은 지금도 잊지 못 하고 있다.

많은 ODM 회사들이 고객사 확대에 열을 올리지만 한때 30여개 회사에 제품을 공급했던 시몬느는 5년 전 오히려 12개사로 줄였다. ODM사 스스로 고객사에 다른 생산 루트를 알아보라고 요청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박 회장의 신념은 확고했던 것.

"기존 고객사 가운데 비중이 큰 10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회사에는 6개월간 유예기간을 두고 다른 생산 루트를 알아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수십년간 제품을 납품하고 스스로 계약관계를 끝낸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죠. 하지만 늘어나는 생산량을 동일한 품질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습니다."

고객사는 줄었지만 시몬느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2012회계연도(2012년 7월~2013년 6월·6월 결산법인)에는 매출 6,939억원, 순이익 1,125억원을 달성하며 각각 18.7%, 115.9%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2007년 매출액이 2,000억원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에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소비자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조 단위 매출을 하는 회사다.

관련기사



이제 박 회장의 눈은 브랜드 사업을 향하고 있다. 현재의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면서 제조물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더해 토종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그의 꿈이 무엇보다 확고하다.

박 회장은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면서 ODM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봤고 시몬느의 최대 캐파는 10억달러(약 1조원) 정도로 보고 있는데 내년에 이미 8억1,000만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3년 내에 10억달러를 돌파하고 나면 이후에는 자체 브랜드로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3~5년 내에 유럽이나 미국의 명품 브랜드 인수도 계획 중이다. 박 회장은 "DNA가 확실한 브랜드였으나 투자자나 경영진을 잘못 만나 일시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든지 의류에는 전문성이 있으나 핸드백·액세서리 등을 론칭하는 데 고전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인수할 계획"이라며 "자회사 시몬느인베스트먼트를 통해 3,000억~6,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고 기관 투자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품 생산부터 품질 관리까지 일괄 지원하는 대신 일부 지분을 받는 형식으로 브랜드 인큐베이팅에도 나선다. 현재는 해외 신진 디자이너 2명을 지원하고 있고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신진 디자이너는 생산기반을 쉽게 마련할 수 있고 시몬느는 브랜드 성장의 과실을 나눌 수 있어 1석2조"라며 "10명 중 한 명만 성공해도 승산이 있다"고 설명했다.






● 박은관 회장은

△1955년 출생 △1979년 연세대 독문학과 △1980년 청산 입사 △1987년 시몬느 사장 △2005년~ 시몬느 회장








이젠 '내 그림' 그릴 때 … 토종 브랜드로 승부 볼 것

내년 정식 론칭 예정
핸드백 박물관도 오픈

서은영기자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수십년 전부터 토종 명품 브랜드를 꿈꿨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 갖추고도 브랜드 론칭을 주저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이세이미야케 등 일본 토종 브랜드들이 글로벌 명품으로 인정받은 배경에는 세계인이 인정하는 일본의 브랜드 가치가 있었듯 한국의 국격도 보다 높아져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의 한식·K팝 등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박 회장은 '남의 그림이 아닌 내 그림을 그릴 때가 됐다'고 느꼈다.

수백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명품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처럼 그는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갈 계획이다. 그래서 정식 론칭 시기도 오는 2015년으로 잡았다.

2015년 9월14일에는 도산대로 에르메스 매장 바로 옆 200여평 부지에 '0914' 브랜드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줄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한다. 초기에는 일본·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갈 계획이다.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면서 시몬느가 30여년 가까이 몸담았던 가방의 문화사회학적 의미를 짚어보고 그 스토리를 대중에게 알려주자는 취지에서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인 '백스테이지'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시몬느가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유산과 철학을 가진 회사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200억원 이상이 들었지만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CNN·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이 박물관 개관 소식을 전세계에 알렸다.

물론 시몬느가 제조자개발생산(ODM)으로 성장한 회사이고 앞으로도 ODM이 회사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보니 고객사들과 이해상충이 되지 않는 선에서 자체 브랜드를 키워가야 한다는 점은 크나큰 도전이다.

이에 박 회장은 "초기에는 고객사가 타깃으로 하는 지역과 가격대를 피하면서 이해상충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브랜드 마케팅도 기존 업체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만개 가까운 디자인 패턴을 보유한 시몬느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을 새롭게 개발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박 회장은 "0914 전담 디자이너들에게는 1년간 하나의 디자인만 개발해도 좋으니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며 "핸드백 박물관 1층의 안테나숍에서 0914의 일부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독특한 디자인에 끌려 찾아온 일본인·중국인 고객들이 전체 고객의 절반 이상"이라고 소개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