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마·경륜장 '막가는 도박판'

베팅한도 말로만…한도초과 체크 방법없어지난 27일 오후 경마팬들로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인 경기도 과천 경마장의 1층 관람석.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성모(52ㆍ경기도 안산시)씨는 한움큼의 마권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월급으로 받은 200여만원중 대부분을 제8경주에 걸었지만 예상이 빗나갔던 것이다. "1회 베팅한도가 10만원인데 그 많은 마권을 어떻게 구입했느냐"는 질문에 성씨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경마와 경륜을 건전한 레저로 유도하기 위해 경주당 베팅한도(경마 10만원, 경륜 5만원)를 정해두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는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의 무리한 베팅에도 원인이 있지만 시행자인 한국마사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물론 감독기관인 농림부와 문화관광부, 지자체가 세수확대에 급급해 단속에 미온적인 탓도 크다. 이 때문에 서민들에 건전한 레저공간을 제공한다는 당초 목적과는 달리 경마장과 경륜장이 도박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루 수천만원 베팅도 성씨는 5년전에 심심풀이로 경마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이제는 중독이 돼 주말마다 이곳을 찾고 있다. 베팅한도와 관련, 그는 "1회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창구마다 돌아다니면 마권 구입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단지 조금 귀찮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300만원까지 마권을 산 경우도 있지만 한도에 걸려 사지 못한 적은 없다"며 "일부 꾼들은 일당을 주고 사람까지 고용해 하루 2,000만~3,000만원 베팅도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사정은 경륜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일산신도시 마두동에 있는 경륜 장외발매소를 찾는 김모(43ㆍ고양시 행신동)씨는 "경주당 5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혼자서도 몇십만원어치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환급을 할 때 창구 아가씨에게 팁을 주면 한 창구에서 여러 장 사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도 경마장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동원해 하루 수천만원까지 베팅이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레저아닌 도박장 전락 이에 따라 경마장과 경륜장은 레저공간이 아닌 도박장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과천 경마장에 들어찬 수만명의 '베팅맨'들은 30분 단위로 진행되는 경주의 베팅에만 신경을 쓸 뿐 경기를 보고 즐기는 것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이들은 경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출주마에 대한 기록을 살피고 출주마 소개가 끝나면 마권을 사기위해 발매소 앞으로 달려갔다. 다니던 회사가 퇴출돼 일자리를 잃은 서모(36ㆍ경기도 시흥시)씨는 "한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퇴직금을 갖고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는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액을 잃은 뒤에 찾아드는 허탈감과 상실감 뿐이다. 부천에서 왔다는 한 할아버지는 "뚝섬에 경마장이 있던 시절부터 수십년간 베팅을 해 왔지만 돈만 많이 날렸다"며 "젊은이는 절대로 오지말라"고 당부했다. ◇신분증 검사 등 대책 시급 이처럼 경마ㆍ경륜장의 베팅한도가 지켜지지 않아 도박장화하는 이유는 한도를 체크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신청지에 기입을 하고 돈만 제출하면 발매창구에서는 아무런 검사없이 마권이나 차권을 내준다. 1회 최고한도로 산 뒤 돌아서서 그 창구에서 마권을 다시 사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노종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카지노의 경우 입장때 신분증을 제시하게 하고 가족이 출입금지를 신청할 경우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며 "경마장과 경륜장도 최고 한도로 구입하는 경우는 신분증 검사를 실시하거나 베팅수 제한을 통해 건전한 레저로 정착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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