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샤워실의 바보'가 된 연말 재정산


지난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한 카페에는 '연말정산이 이상해요'라는 제목이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의 가계부상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부양가족인 부모님의 의료비 200만원, 신용·직불카드로 쓴 금액이 200만원가량 늘었다는 것뿐이다. 아직 기부금과 교육비는 계산이 덜 돼 정산에는 포함하지 못했다. 연봉이 5,000만원이 조금 안되는 그는 부양가족이 많아 원래 소득세를 많이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세금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온 상황에 세금을 대부분 돌려받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게 글의 요지였다. 이런 생각을 한 이가 단지 글쓴이뿐이었을까.

"대부분 세 부담이 같거나 줄어든다." 연말정산 논란 과정에서 정부가 내놓은 답변은 한결같았다. 물론 기획재정부도 인정했듯 근로소득자의 10%가량인 연봉 7,000만원 이상에서, 그리고 그 아래에서도 세 부담이 늘어난 사람이 분명 있다. 출생·다자녀 공제가 없어지면서 토해내야 할 금액이 늘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부담이 늘어나는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이고 얼마나 될까. 줄어드는 이들은 또 얼마나 혜택을 보는 걸까. 연말정산이 끝나기 전에는 여기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누구도 답을 모르는 상황임에도 단 3일 만에 세법개정 추진도 모자라 소급적용이라는 해괴한 결정을 내렸다. 세법을 만든 정부는 수세적이었고 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정치권의 노림수는 먹혀들었다. 정책취지에 공감한다며 법안통과에 몰표를 던졌던 정치권이 말을 바꿔 '세금폭탄'을 앞세우자 정부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조세 기반을 확충하려던 세법개정안의 취지도 이렇게 빛이 바랬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 정도도 감당 못하면 앞으로 미래 대비 증세의 길은 물 건너갔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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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정부 실책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 도그마에 빠져 우회 증세의 꼼수를 동원했다. 연봉 7,000만원 이하 중산층은 세금 1만~2만원 정도 오른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은 결정적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번에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결과를 토대로 차분하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게 아니다.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얄팍한 심산에 급한 불 끄기에 그쳤다. 세법은 또 누더기로 변질될 것이다. 연말 재정산 사태를 보면서 샤워실의 바보가 자꾸 연상되는 이유는 뭘까.

/세종=경제부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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