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빛낸 사람들에게는 그를 뚜렷이 기억하게 하는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예외다. 상징적인 한 사건만으로 그의 행적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너무 바쁜 나날을 지내왔기 때문이다.6·29 은행퇴출, 5대그룹의 구조조정 일정과 계획을 못박은 12·7 정재계간담회, 인력감원을 둘러싼 은행노조의 명동성당 파업 집회 등. 우리 경제의 지도를 바꾸고 기업과 금융의 생존 환경을 한꺼번에 변화시킨 많은 사건의 중심에 예외없이 李위원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李위원장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우성이 메아리지곤 했다. 은행 불사(不死) 신화의 종말,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깨질 때 마다 수많은 당사자들에게 충격과 고통을 안겼기 때문이다. 오랜 관행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앞장선 李위원장을 그냥 「구조조정의 주역」이란 수식어로 설명하기는 부족한 느낌이다. 생존권을 박탈한 「질서 파괴범」, 낡은 관행을 혁파한 「질서 창조자」로 각각 극단으로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주어진 짐을 버거워하기 보다 기꺼이 온몸으로 부딪쳐 왔다. 재무부시절 「장관급 과장」이란 별명을 얻으며 좌충우돌 하다가 20년 가까이 관변을 떠나있던 그는 그동안 쌓인 「일에 대한 갈증」을 보란듯이 해소했다는 평가다.
李위원장은 지난 4월1일 금감위 지휘를 맡았다. 하지만 李위원장이 우리 경제의 새 틀짜기에 손대기 시작한 지는 벌써 만 1년이나 된다. 지난해 12월27일 비상경제대책위 실무기획단장으로 임명돼 경제개혁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李위원장과 거취를 같이 해 온 한 측근은 『술을 마시다가도 갑자기 사무실로 돌아와 금융·재벌 개혁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술했고 당시 구상한 골격이 지금까지 관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 재벌개혁 5대과제 등의 기본 가닥이 그 때 마련됐다는 것이다.
李위원장의 밤시간은 특이하다. 李위원장은 금융계와 학계의 소장파 전문가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 젊은 감각과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게 주변의 설명이다.
이같은 개인적 노력과 함께 실물경제를 두루 섭렵한 경력 덕분인지 그는 일에 부딪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좌고우면하지 않는 편이었다는 게 측근들의 관측이다. 그러나 일 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지역경제와 특정인의 이해를 앞세우는 안팎의 압력 속에서 개혁의 원칙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그를 힘들고 슬프게 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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