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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한국형 도제 시스템인 일·학습병행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은 학교 교육과 산업현장의 수요가 따로 노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직업훈련 과정에 참여한 고등학생 비율이 17.6%로 독일(44.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취업도 못하고 교육도 받지 않는 이른바 '니트(NEET)'족이 15~29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국은 1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보다 훨씬 높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대학에 가지만 졸업을 해도 취업하기가 어렵고 설령 일자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기업 눈높이에 맞지 않아 재교육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실제 일·학습병행제 학습근로자는 고졸·전문대졸·대졸 등으로 다양하지만 해당 전문지식은 다 같이 부족하다 보니 업무를 배우는 데 있어 학력에 따른 차이가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채용 후 실무 투입에 이르기까지 신입사원 재교육에 평균 6,088만원가량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이마저도 중소기업들은 자금 등의 여력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일회성 주입식 운영을 하는 실정이다. 회사 여건상 충분히 교육시키지 못하고 잘하든 못하든 일을 맡길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일·학습병행제다. 이 제도는 근로자와 기업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다. 근로자들로서는 기업 실정에 맞는 실무교육을 익혀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기업으로서는 신입사원에 대한 직무교육을 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포스코의 외주 파트너사인 세영기업은 15명의 학습근로자를 선발해 지난 8월부터 1년 과정 교육을 시작했다. 이들은 1,200시간의 기업현장(OJT)훈련과 이론교육과정(Off-JT)훈련을 통해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인 '용선과 용강 SLAG 배제작업'과 관련한 직무를 수행한다. 이 회사는 직원교육을 위해 별도 직무훈련장을 만들고 1대1 매칭을 통해 기초업무기술에서 조직생활까지 전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가동하며 체계를 확립했다.
세영기업이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1년간의 교육으로 신입 직원들을 3년 정도 근무한 기존 사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이전에는 새로 사원이 들어오면 길어야 2~3개월 정도 교육을 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해 일을 하면서 숙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원하는 수준까지 보통 2~3년이 걸렸다. 게다가 선임자에 따라 차이가 커 직무 숙달의 통일성을 갖추기 어려웠다.
장문현 세영기업 품질혁신팀장은 "회사 업무는 우리가 제일 잘 알기에 직접 눈높이에 맞춰 교육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며 "업무 프로세스 이해력이 굉장히 높아지고 기업문화에도 금방 적응한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젊은 인재를 채용해 전문인력으로 양성함으로써 인력난을 해소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후미등과 안개등 등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태광공업은 지난해 공장을 신축하고 올해 생산시설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생산기술직 인력을 고졸로 채용했다. 7월부터 일·학습병행제를 가동한 이 회사는 20년 이상 경력의 사출기술자 직원이 학습근로자 4명에 대해 '사출성형기 조작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이들은 1년 과정을 수료하면 2년의 경력이 승급된다. 손영태 태광공업 대표는 "짧게는 5년 후 전국적으로 사출기술자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금형 교환과 사출기를 능숙하게 다를 수 있는 기술을 갖추면 평생 기술자가 될 수 있다"면서 "직원들 역량 강화를 위해 사내대학 부설학과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과·제빵기계 업체인 대흥소프트밀은 대한민국 명장인 김대인 대표가 직접 40년 동안 쌓은 제작기술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2년 동안 2,400시간 과정으로 운영되는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는 학습근로자들은 전문기술을 익혀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는 전체 1,000여명의 학습근로자들은 만족도도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굳이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남들 따라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인식도 전환됐다. 불필요한 스펙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고졸이어도 교육을 마치면 대졸자와 연봉이나 승진에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병역특례나 군 기술병으로 복무하는 맞춤특기병 입대도 가능하다.
세영기업 학습근로자 김형무씨는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직장을 구해 돈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는데 일도 재미있고 자격증도 딸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면서 "교육시간 외에도 수시로 선배에게 멘토링을 받고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배우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