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와 차 한잔] 김진호 한신공영 사장

"반포단지, 리모델링 더 적합"


서울 잠원동의 한신공영 사옥을 찾아가는 길은 온통 ‘한신타운’이다. 무려 2만여가구의 한신아파트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신반포지구의 한복판에 한신공영 간판을 조그맣게 내건 5층짜리 꼬마 빌딩이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고 있다. 지난 70~80년대의 ‘건설시대’를 풍미했던 한신공영의 옛 영화와 현주소가 선명하게 대비되는 풍경이다. 매일 출퇴근길마다 이런 풍경을 접해야 하는 김진호(52ㆍ사진) 한신공영 사장에게는 심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꼭 지금의 모습이 초라해 보여서가 아니라 제 손으로 지은 한신아파트의 재건축 시공권마저 고스란히 대형 건설 업체들의 손에 내주고 있어서다. “반포1차부터 27차까지 2만세대를 정말 튼튼하게 지었고 지금도 어느 아파트 부지에나 한신공영의 지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재건축 간판 하나 내걸지 못했습니다. 맡겨준다면 잘해낼 자신이 있는데 주민들 모두 대형사 브랜드만 바라보고 있지요.”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우직하게도 ‘일대일 직접 공략’이다. 반포단지 수주를 위한 전담반인 ‘리모델링 특수사업부’를 만든 뒤 반포아파트 2만세대의 집집마다 안내문을 발송하기 시작했다. 반포단지에는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이 훨씬 효율적이고 리모델링은 반포지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한신공영이 적임자라는 내용의 호소문이었다. “반포단지는 동간 거리가 넓고 지하공간이 충분해 최적의 리모델링 요건을 갖추고 있어요. 재건축이나 다름없는 새 아파트로 탈바꿈시키면서 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공사기간도 1년6개월 안팎이면 충분합니다. 비용과 기간을 고려한 실질적 프리미엄이 재건축보다 높다는 얘기죠.” 김 사장이 솔직하게 풀어놓는 ‘반포 호소문’ 얘기는 중견ㆍ중소 주택 업체들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IMF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2002년 법정관리를 졸업한 한신공영에서 더 이상 왕년의 튼튼한 체력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시 부사장으로서 실질적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맡았던 김 사장은 기초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첫 열쇠로 ‘수주 확대’를 꼽았다. 매년 기록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재 수주잔고가 5조원에 달할 만큼 본 궤도에 올라섰지만 아직도 집집마다 호소문을 보내야 할 만큼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재개발ㆍ재건축사업과 관급공사에 집중하면서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더군요. 공을 많이 들였던 서울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는 경쟁사보다 200억원이나 저렴하게 제시했는데 결국 입찰에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조합이 도급순위 상위 10개 업체에만 입찰 자격을 줬기 때문이죠. (검은) 돈을 썼다면 경쟁에 낄 수 있었겠지만 눈물을 머금고 깨끗이 물러났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김 사장은 재개발ㆍ재건축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운영의 민주화’라고 강조한다. 많은 추진위ㆍ조합이 여전히 이권에 개입하고 조합원들의 돈을 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또 사업 과정이 지나치게 세분화되다 보니 각 단계마다 소요되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추진위가 전문 시공사와 직접 협의해 원스톱으로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는 대신 운영의 민주성과 절차의 투명성만 확보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장 취임 2년차인 올해 김 사장은 해외사업도 본격적으로 진출해볼 생각이다. 3년 전부터 차근차근 공을 들여온 베트남에서 1억2,000만달러짜리 하노이 재개발사업을 수주, 정식 계약을 체결한 뒤 현지 정부의 투자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베트남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베트남의 민영화를 앞두고 지분 참여를 제안하는 등 장차 플랜트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도 마련 중이다.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몽골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서도 장기 수주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요즘 국내 건설 업체들이 앞다퉈 해외로 진출하고 있지만 쓰라린 경험도 많이 했죠. 국내시장이 어렵다고 해외로 도피하듯 빠져나가서는 성공 확률이 높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국내사업을 근간으로 해외사업이 보조하는 방식이 돼야 합니다. 지난 3~4년간 몇몇 나라에서 기본을 충실히 다졌으니 이제 첫 삽만 제대로 뜨면 됩니다.” /김문섭기자 lufe@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경영철학과 스타일 -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죠" 김진호 한신공영 사장은 토목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건설 업체의 말단 기사로 출발한 그를 최고경영자(CEO)의 자리까지 올려놓은 원동력은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저돌적 근성과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한눈을 팔지 않는 부지런함이다. 그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난 79년의 ㈜한양은 당시 첫손에 꼽히던 굴지의 건설 업체였다. 서울 명문대 출신들이 즐비하던 회사에서 이 단신의 엔지니어는 ‘노가다’ ‘돌X가리’ 소리를 지겹게 들으며 6개월간 도면과 서류 복사만 도맡았다. 지방대 나온 엔지니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던 하루하루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영문 서류들을 2부씩 복사해 몰래 챙겨놓은 뒤 매일 밤새도록 뒤적이며 씨름을 했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자원해 파견됐던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였다. 명문대 출신들이 영어에 막히고 전문용어에 막혀 쩔쩔매는 사이 남모르게 쌓아왔던 김 사장의 ‘내공’이 빛을 발했다. 엔지니어로서 이례적으로 현장 코디네이터를 맡아 실력을 인정받은 뒤부터는 승진 속도도 빨라졌다. 기술사자격증도 가장 먼저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김 사장은 평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회사에 나의 종교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옛 한양 시절 존경하던 배종렬 회장을 비롯해 존경하는 상사들을 ‘교주’로 여기는 오랜 버릇이 있다. 교주라고는 해도 숭배하듯 무조건 떠받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출근길 회사 건물을 바라보며, 업무 중 창밖을 내다보며, 혹은 사무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회장 OO야, 사장 △△야, 내가 간다. 기다려라. 너한테 나밖에 더 있니. 내가 안 하면 누가 해주겠니”라고 혼잣말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항상 신선한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하고 스스로에게 자부심과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그만의 유머러스한 직장생활 비법이다. ◇김진호 사장 약력 ▦73년 2월 광신상고 졸업 ▦77년 2월 인하대 토목과 졸업 ▦81년 2월 건국대 경영대학원 졸업(석사) ▦79년 7월~93년 5월 ㈜한양 해외(사우디아라비아) 근무, 현장소장 ▦93년 6월 대아건설㈜ 총괄본부장(전무) ▦2003년 1월 한신공영㈜ 부사장 ▦2006년 1월 한신공영㈜ 사장 ▦2007년 1월 ㈔한국리모델링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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