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의도 정가는 후보선출을 위한 경선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각 정당의 모든 경선 후보들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적임자임을 자처하며 세종로 1번지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빨리 경선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8월 20일 후보를 공식 확정할 예정인 가운데 이명박ㆍ박근혜 후보 간의 치열한 대결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범여권 진영은 ‘대통합’을 위한 방법론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수많은 경선 예비 후보들이 대통합 추진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차원에서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실질적 의미의 경선(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은 지난 70년 9월 신민당의 제7대 대선 후보선출을 위한 경선(김영삼ㆍ김대중ㆍ이철승 대결)으로 이후 경선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소멸됐다. 87년 현행 직선제 개헌을 통해 경선의 장(場)이 마련됐지만 ‘보스정치’로 대변됐던 ‘3김 정치’의 도래로 당내 경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권을 장악한 속칭 제왕적 총재가 대권을 향한 후보로 나서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식됐기 때문이다.
3김 정치 소멸의 과도기적 시기였던 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후보경선이 있었지만 ‘이회창 대세론’으로 명목상의 경선으로 그친 바 있다. 이후 2002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물리치고 후보로 선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큰 흥행을 불러 일으킨 경선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경선이라는 용어가 우리 정치과정에서 일상화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경선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최소한 제도적 차원에서 과거 권위주의적 하향식(Top-Down) 정당운영이 민주적인 상향식(Bottom-Up) 운영으로 변화됐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난립한 범여권 예비후보들을 추리기 위해 묘사되고 있는 ‘컷오프’라는 용어의 등장은 과거 여야를 막론한 권위주의적 정당체제 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이었다.
경선이라는 용어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바로 경선 불복이다. 경선결과에 불복, 독자출마 또는 독자노선을 감행했던 모습들을 우리는 지켜봐왔다. 이 같은 경선 불복의 방지를 위해 정치권은 당내 경선 불복 후 독자출마가 불가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2005년 개정한 바 있다.
경선불복을 방지하기 위한 조문을 공직선거법에 신설해야만 했던 우리의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비민주적인 경선불복 행태의 퇴출일 것이다. 비록 제도적 차원의 경선불복은 차단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경선불복이 나타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과연 경선불복이라는 용어가 우리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