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유감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

곳곳에서 꽃소식이 들리는 것이 봄이 제법 완연해졌다. 우리 경제에도 경기회복 기대감이 한껏 움트는 모습이다. 그런데 올해도 4월1일이 되면 많은 기업들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출자나 의결권 행사에 제한을 받게 될 모양이다. 지난 86년 도입된 출자총액제한제가 강산이 벽해가 되도록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계는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고 호소하고 기본권 침해이므로 위헌이라고 지적했지만 정책당국은 순환출자의 폐해를 들어 아직은 규제를 풀 때가 아니라고 한다. 세월이 바뀌고 기업들도 달라졌는데 정책은 왜 그대로일까. 아마도 재벌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고 재벌개혁이 곧 경제정의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재벌의 문제라는 것도 따져보면 과거에 부작용이 많았다거나 소유지배의 괴리 때문에 주주이익 침해소지가 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과거에 문제를 일으켰던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모두 망했다. 남은 기업들은 이제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있고 시장의 힘도 커졌다. 아직도 과거사가 반복될 것으로 우려한다면 이는 80년대 권위주의 정부의 문제를 현재 정부에 결부시키는 것처럼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리고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한다는 비난이 많은데 그렇다면 주식보유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얘기다. 문제는 지배구조 괴리도 때문에 주주이익이 침해당하는가의 여부일 것인데 소액주주 보호장치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외국인 주주들의 지나친 경영간섭과 무리한 요구가 문제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특히 삼성전자마저 인수합병(M&A) 불안에 떨고 있는 마당에 괴리도를 낮추라는 얘기는 외국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거나 기업가치 향상 대신 M&A 방어에 전념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이다. 해외 전문가 중에는 오너가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것을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보아 한국기업을 연구하는 이들도 적지않다고 한다. 우리가 기업의 강점을 공연히 억누르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대목이다. 올봄에는 제발 과거사나 막연한 경제정의감 때문에 기업에 채워놓았던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자. 문제가 있다면 감시감독을 통해서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일이다. 도둑을 막으려 야간통행을 금지하듯이 출자를 규제하는 것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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