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소문내지 맙시다


궁정동·효자동·창성동·통의동·적선동·필운동·체부동·통인동·누상동·누하동·청운동…. 경복궁 서쪽 지역을 조각보처럼 나누고 있는 동네 이름들이다. 요즘은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원래는 '웃대'라 불렸다는데 어느새 경복궁 동쪽 가회동·삼청동 일대를 일컫는 '북촌'에 대응하는 이름으로 각광 받고 있다. 종로구청에서는 여기 '세종대왕 나신 곳'이 있다며 세종마을로 부르자고 하는데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알다시피 북촌은 조선 시대 양반들의 거주지로 오랜 역사와 문화가 깃든 지역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가회동 31번지 일대 등 개발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용케 남아있던 한옥밀집지역을 보존하고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종 지원과 관심이 쏟아졌다. 그것이 너무 유명세를 타면서 외려 역효과가 나서 옛집들은 미술관과 카페와 부유층의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속속 변신했다. 북촌은 원래 고요하고 묵직한 멋을 잃고 거의 관광지처럼 북적거리게 됐다.


그런 차에 얼마 전부터 북촌 대신 서촌이 '떴다'. 아마 이 일대가 2010년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 및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되며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체 면적 약 130만㎡(지구단위계획구역 582,162㎡)의 31%가 한옥(당시 668동)으로 이뤄져 있다. 필운대·선희궁·창의궁터·윤덕영가 등 역사적 기억이 담긴 장소들이 남아있어 북촌이 지나치게 상업화됐다며 안타까워하던 이들은 마치 예전의 북촌을 다시 발견한 양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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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나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통의동이라고 그때만 해도 누가 주소를 물어 대답하면 "어디요?"하며 사람들이 반문할 정도로 낯선 이름을 가진 동네였다. 청와대 가는 길에 붙어 있어 오랫동안 개발 제약이 있던 까닭에 적산가옥과 한옥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백여년 전 통인동에 살았던 시인 이상이 다니던 학교(오래전 사라졌지만), 누비던 골목(아마도 '오감도'에 영감을 주었을), 총독부 기사 시절 오갔을 길 등의 흔적이 남아있던 곳이다. 그곳에 우연히 놀러 갔다가 한눈에 반해 거의 충동구매 수준으로 40년도 더 된 양옥을 하나 사서 집과 사무실로 썼다. 경복궁 안뜰을 정원으로 삼고 차도 못 다닐 정도로 막힌 듯 교묘히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산책로 삼아 매일 거닐었다. 오래된 동네다운 쓸쓸함마저도 무척 사랑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그곳에 규제가 풀리며 갤러리와 카페들이 하나씩 들어오자 슬슬 불안해졌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동네를 나오며 부디 북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다. 걱정대로 요즘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천정부지로 오른 지가와 동네를 점령 중인 상업시설들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동네가 유명해지면 거기서 오래 살며 쌓여온 역사를 기억하던 사람들이 밀려나고 음식점과 술집들이 모여들고 대기업 브랜드들이 블록을 통째로 사들여 개발하며 옛 흔적을 지워버린다. 북촌·서촌만이 아니라 홍대 앞, 가로수길 등 사람들이 좋다고 몰려가는 동네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정말 좋아하는 곳은 말을 아끼자고 절대 소문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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