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18> 10년 후배 수험생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경제DB

딱 10년 전 저도 수능시험을 봤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수능시험 날 느꼈던 그 떨림과 불안감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당시 고3이었던 필자에게 수능은 19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흘러 가만히 돌이켜 보니 인생의 수많은 일 중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인데 그 날은 왜 그렇게 떨리고 가슴 졸였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합니다. 수능점수와 대학 그리고 취업 등 이후의 삶이 그 날 모두 결정 날 것만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중압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전환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때 예상했던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지금 와서 보니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했었다고 할까요. 어쨌든 그 당시에는 수능‘시험’이 지금까지의 궤적을 끝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라는 생각에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여긴 탓도 큽니다.

마케팅 학자들은 ‘새로운 선택’이라 인지하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혁신 저항(Innovation resistance)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가 새로운 선택을 할 때는 불확실성 및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감정이 ‘지각된 위험(Perceived risk)’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려는 심리적 저항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합니다. 지각된 위험에 대해서는 여러 정의가 있지만 죠버그의 관점을 빌리자면 ‘불행이 발생할 확률과 그 사건이 끼칠 영향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에 해당합니다. 결국 ‘수능시험을 예상보다 잘 치르지 못했을 경우 내 인생에 엄청난 파장이 발생할 것’이라는 의식이 지각된 위험을 만들고 ‘수능을 망칠 가능성과 망쳤을 때 내 삶에 미칠 파급력이 크다고 생각할수록’ 심각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지각된 위험은 숲 대신 나무만 봤기 때문에 과대평가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무 말고 숲을 보라’는 관용구는 개별 사건만 보게 되면 전체적인 것을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머리 싸매고 한 가지 문제만 고민하다가는 되려 해결책을 찾기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한 발짝 물러나 큰 틀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막상 닥치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해보면 의외로 ‘내가 대단치 않은 일에 이리 호들갑을 떨었나’ 생각하며 평정을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겪을 때에는 엄청난 비극이었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이런 일도 있었지’하며 추억하게 되는 것처럼, 결국 살아가며 찍게 되는 수많은 점 중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2005년 고(故)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졸업식 축사에서 ‘점을 잇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그 무엇이든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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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순간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당연히 전환점은 존재하지만 그 한 순간이 차후의 모든 일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대신 ‘순간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매 순간 점을 찍고 훗날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하나의 길이 완성될 거란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10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봤을 때 그 동안 가장 절감한 부분이 같은 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방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수험장을 나오면서 원하던 모양으로 점을 찍어 기쁜 이도 있고 생각보다 작은 점으로 실망스러운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 언급했듯이 점 하나에 모든 게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우선 수고하신 수험생 여러분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의 결과와 상관없이 앞으로 여러분이 그려 나가게 될 소중한 순간 순간을 모두 격려하는 마음으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멋진 그림으로 완성되어 있을 그 순간을 기대하면서….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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