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미디어법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가 최근에 기자와 만나 건넨 말이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펼쳐졌던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치를 무색하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정치권은 지난 6월 비정규직법 개정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후 여당은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시행을 1년 6개월 유예하는 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반면 민주당은 법이 이미 7월1일부터 시행된 만큼 유예를 내용으로 하는 법 개정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정부의 준비기간 소홀을 이유로 사실상의 6개월 유예안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6개월안도 법 시행에 따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다며 강경 모드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결국 비정규직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찾자면 한나라당의 당론이 1년 6개월 유예로 다소 줄었다는 점 정도다. 국민은 진정 정치권이 그동안 무엇을 논의했는지 무엇을 협의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정치권의 관심사는 이제 비정규직법이 아니라 미디어법이다. 한나라당이 6월 국회 처리를 추진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의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대책 마련은 어느새 뒷전으로 물러난 느낌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입법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제도적 개선점을 찾되 노사가 공생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즉 노동계와 경영계가 양보를 바탕으로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는 풀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최대 숙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그저 여야는 비정규직 고용 사업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있을 뿐이다. 소관 상임위인 환노위는 반쪽 회의만 반복하며 실효성 없는 자문회의만 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쇼’만 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을 위해 지난 추경 때 마련한 1,185억원이 정쟁에 묻혀 잠자고 있는 현실에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