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길 모퉁이의 조그마한 상점에서 몇몇 물품들을 계산대에 올려놓자 계산된 금액은 호주달러 1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 우리나라 돈으로 1만원 안팎이다. 말없이 카드를 내밀자 점원은 “크레딧(Creditㆍ신용결제)이냐, 에프트포스(EFTPOSㆍ구매시점 전자자금이체=직불결제)냐”고 물어온다. “신용(credit)”이라고 한 마디 답하면 점원은 아무 말 없이 계산서를 뽑아서 볼펜과 함께 건네준다. 뒤에 줄 서있던 한 현지 주민이 “EFTPOS”라고 말하며 카드를 내밀자 점원은 비밀번호(핀번호)를 입력하는 단말기를 내민다. 손님이 단말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결제는 끝.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호텔에서 가까운 시내 중심가까지 7 달러(호주달러) 가량의 택시 요금이 나왔는데 미처 현찰이 떨어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카드 결제가 되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자 10%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결제는 가능하다고 한다. 수수료까지 8달러 조금 넘는 요금을 결제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듯 시드니에서는 우리 돈 1만원을 넘는 수준의 웬만한 소비 생활을 하는 데 굳이 현찰이 필요치 않은 듯하다. 호주가 안정적인 소액 카드 결제 시장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등을 동시에 결제하는 `체크단말기`역할을 하는 `EFTPOS(구매시점 전자자금이체)`다. EFTPOS 단말기는 길거리의 자그마한 꽃집부터 카페, 구멍가게, 간이 세탁소, 심지어는 주말에 서는 장이나 지하철 표 구입과 같은 소액 결제에도 일상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호주인의 결제 생활에 깊숙히 침투돼 있다. 최근에는 호주 4대 은행 가운데 소매금융에 주력하는 커먼웰스 은행이 전화나 전기, 통신 등 각종 공과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한 전자자금이체(EFT) 시스템인 `XPOS`를 개발해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과 달리 IC칩을 활용한 첨단 결제 기술 도입에서는 뒤늦은 호주가 새삼 조명을 받는 것도 호주가 향후 카드 산업의 성장을 이끌 직불카드 시장에 있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선 유일한 성공 사례로 꼽히며 안정된 시장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호주 은행권에서 IC카드 발급을 선도하는 ANZ은행의 데이빗 히스콧 이사는 “카드 관련 사기등 범죄가 다른 나라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점이 역으로 IC카드 보급을 늦추는 요인이 돼 왔다”고 설명한다. 마스터카드 호주지사의 션 게이든 부사장도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를 겸용하는 다기능 카드의 정착이 스마트카드로의 이행에 오히려 어려움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보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IC카드 보급의 발걸음도 빨라졌지만,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기능을 갖추고 보안 면에서도 우월한 다기능 결제 수단의 보급이 건전한 카드 시장을 육성하는데 일조를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