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뉴스 포커스] 금융권에 또 어설픈 관치

법규 아닌 여론으로 CEO 사퇴 '토끼몰이'<br>금융당국 문책 경고 해놓고<br>김종준 하나은행장 퇴진 압박<br>"금감원이 무리수 둔다" 지적


김종준 하나은행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를 놓고 양측이 정면 충돌한 22일, 금융당국의 한 전직 고위인사는 기자에게 "금융감독원이 또다시 방향을 잘못 짚은 것 같다. 무리수를 두고 있다"면서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책 경고라는 제재 수위를 정했으면 '법규'대로 놓아두면 될 뿐 여론을 통해 과도하게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책 경고를 했으면 과거의 사례에 견줘 알아서 물러나라"는 금감원의 논리에 대해서도 "과거 사례와 김 행장의 사례는 분명히 다르다"며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안의 핵심 당사자인 김승유 전 회장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양측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다. 김 행장에 대한 금감원의 사퇴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금융권은 "(당국의 압박으로 사퇴한) 제2의 BS(부산은행)금융지주 사례가 나오는 것 아니냐"며 다시 한번 숨을 죽이고 있다. 결과에 따라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또 다른 기준점을 남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의 전반적인 기류는 금융당국의 관치가 도를 넘고 있다는 쪽이다. 김종준 행장의 임기완주 선언에 바짝 독이 오른 당국이 최근 무리한 방식으로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날 오후에는 김 행장의 사퇴를 압박하려는 듯이 징계 내용까지 서둘러 공개했다.

금감원의 공개 직후 만난 한 시중은행 고위임원은 "법과 원칙에 입각한 시장친화적 관치는 오간 데 없고 자의적이고 어설픈 팔 비틀기식 관치만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국이 연임만 불가능할 뿐인 중징계(문책 경고)를 내려놓고 당장 김 행장이 물러나지 않는다고 사퇴를 종용하는 이율배반적 발언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이장호 전 BS 회장을 대놓고 바꾸려다 홍역을 치렀던 당국이 감독권 행사를 빌미로 힘을 과시하려는 잘못된 관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번 일과 전혀 관계가 없는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 사건, 외환카드 분사 등 하나금융의 주요 현안이 사퇴 압박용으로 연계되고 있는 현실은 당국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은 금융계 원로인 김승유 전 회장이 부담을 무릅쓰고 최고 수위의 발언으로 당국을 겨냥한 데서도 확인된다. 김 전 회장은 이날 "금감원이 한 건을 갖고 세 차례나 검사한 적이 있었나. 지금껏 이런 예를 본 적이 없다"며 "금감원이 그렇게 한가한 조직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차라리 자신을 문책하라"는 호소임과 동시에 아무리 무소불위의 금감원이라도 잘못된 점은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김 행장은 지난 2011년 하나캐피탈 사장 재직 시절,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해 60억원의 투자 손실을 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미의결, 서류 조작 같은 과실이 있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그 결과 당국은 지난 17일 제재 심의를 열어 김 행장에게는 문책경고를, 김 전 회장에게는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문제는 당국이 법적으로는 임기 수행을 용인해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계에서는 김 행장의 과실이 당국 표현대로 리더십에 영이 서지 않을 만큼 중대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제재심의 때 직무정지나 해임권고를 내렸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당국이 정공법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카드를 버려놓고 이제 와서 조직을 위해 임무를 완주하겠다는 김 행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게 금융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그래서 "본인의 거취 문제는 알아서 해야겠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제재를 내린 만큼 본인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국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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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규정의 미비로 징계 수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면, 이를 바로잡는 일부터 하는 게 순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결정을 두고 당국에서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법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을 받아도 입장이 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김 행장이 김 전 회장을 대신해 희생양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달리 보면 당국의 징계 자체가 무리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국은 지난 2012년 상반기 검사에 이어 1년 반만인 지난해 12월 2차 검사를 했고, 연초에는 하나캐피탈을 통해 다시 이 사건을 들여다 봤다. 총 3차례나 검사를 받은 셈. 횟수도 이례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김 행장의 징계가 경징계가 중징계로 수위가 뛰었다는 게 정설이다.

중징계를 받은 금융계 CEO들이 자리를 물러났다는 관례를 김 행장 사례와 견주는 것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황영기 전 KB금융회장은 문책경고가 아닌 직무정지를 받았다. 애초부터 임기 전 사임에 말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손실과 관련해 중징계가 예상되자, 임기를 3개월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투자손실 규모도 수천억원으로, 60억원의 김 행장은 조족지혈수준이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회계기준 위반으로 문책경고를 받았지만, 임기는 모두 마쳤다. 다만 징계 자체가 임기 마무리 시점에 나와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그래도 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의 일이고, 김정태 행장은 행장 시절 과오다. 굳이 잣대를 들이대면 김종준 행장의 과실이 더 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전직 금융계 고위 관료는 "(김종준 행장 징계는) 방향을 잘못 짚은 게 아닌 가한다"며 "전임 사장 재직 때 일이고, 이전 중징계 사안과 비교할 때 징계 수위도 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찌 됐든 하나금융은 내부적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앞으로 kt ens 헙력업체 사기 대출 사건을 비롯해 당국과 부닥칠 사안이 많은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감독 당국에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어 가급적 이 일이 더는 이슈화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이 감독 당국의 조사와 징계 절차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국의 처신은 신중해야 하고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면서 "수익성 확보 등 조직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인 만큼 하나은행으로서는 김종준 행장이 남아 있어주길 바라는 거 같지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어 자칫 김 행장이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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