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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설계도면과 설명서 등 일부가 또 인터넷에 공개됐다. 최초로 유출된 지난 15일 이후 네 번째다. 하지만 정작 한국수력원자력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보 유출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확한 유출 규모와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를 맡은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IP를 발견하고 수사관을 급파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21일 한수원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1시30분께 원전 설계도면을 해킹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에 한수원을 조롱하는 글과 함께 4개의 압축파일을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는 고리 1·2호기 공기조화계통 도면 5장과 월성3·4호기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목차 7장, 미국에서 만든 노심설계용 공개프로그램 MCNP5, 일본에서 개발한 핵종량계산 프로그램인 BURN4 등이다.
자료를 공개한 인물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원전반대그룹 회장'이라고 자칭하며 한수원에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공개 안 한 자료 10여만장도 전부 세상에 공개하겠다"며 "고리1·3호기와 월성 2호기를 크리스마스부터 가동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라"는 글도 함께 남겼다. 이 인물은 지난 19일 오후8시께에도 트위터를 통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고리 1·3호기와 월성 2호기의 가동을 멈추지 않으면 '꽝, 꽝, 꽝' 소리와 함께 국민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방사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협박성 글도 게재했다.
원전 자료 유출이 국가 중요 보안시설인 원전에 대한 테러 형태로 흐르면서 정부합동수사단도 본격적인 범인 추적에 나섰다. 합수단은 이날 국내 한 지방에서 범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IP를 발견하고 현장에 수사관을 급파했다. 이어 자료가 유출된 고리와 월성 원전에도 수사관을 보내 해킹과 내부자료 유출 경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한수원은 물론 주무부처인 산업부조차 해킹 여부와 어떤 자료가 나갔는지도 전혀 감을 못 잡은 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수원은 18일 일부 설계도면이 공개되자 "해킹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지만 9일 알 수 없는 발신자로부터 악성코드가 담긴 e메일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PC를 통해 설계도면 등 내부자료가 빠져나갈 가능성도 커지면서 허술한 대응과 보안 관리가 도마 위에 오른 상황.
복수의 산업부와 한수원 관계자는 "지난 새벽에 새로 유출된 자료도 기존에 공개된 자료와 비슷한 일반자료로 원전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며 "해커로 주장하는 인물이 얼마나 자료를 갖고 갔는지는 본인이 직접 다 공개하지 전까지는 알 수도 없고 현재 유출 경로도 파악을 못해 합수단의 수사만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련 부처의 부실한 대응에 시민단체 '에너지정의행동'은 사태가 심각한 만큼 정부가 조속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정의행동은 "가장 먼저 어디까지 해킹을 당했고 어떤 자료가 유출됐는지 상황파악을 해야 하지만 한수원은 '중요하지 않은 교육용 문서'라는 식의 답변만 하고 있다"며 "테러 집단에 의해 핵발전소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이면 정부는 상황을 그대로 공개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