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6월 11일] 갈등관리시스템 재정비하자

지난달부터 한 달 이상 지속돼온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부안사태가 떠올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성난 민심이 격동하는 과정이 지난 2003년 방폐장 건설을 반대하던 부안주민의 저항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당시와는 이슈의 성격과 사회적ㆍ정치적 배경이 다르고 집회 참여자와 운동방식도 상이하지만 갈등의 원인과 증폭과정, 그리고 갈등관리 방식이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공통점은 사태의 근본 원인이 핵의 안전성 문제나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라는 점이다. 충분한 여론수렴 절차도 없이 정부의 스케줄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바람에 국민이 더 이상 정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다. 부안사태는 2003년 2월 산업자원부가 고창ㆍ울진 등 네 곳을 방폐장 후보지로 발표했으나 주민 반대로 한 곳도 유치신청을 하지 않자 다급해진 상태에서 무리수를 던진 것이 발단이 됐다. 기존 방폐장이 2008년에는 포화상태에 달하기 때문에 신규 건설이 무산될 경우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과 동시에 방폐장의 안전성 홍보에만 열을 올리면서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폐기물)의 중간저장시설 건설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넘어갔다. 위도에 대한 부지적합성 조사도 10일 만에 서둘러 끝내는 바람에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았다. 쇠고기 사태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1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타결되면서 이미 갈등의 암운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동안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발견된 작은 뼛조각 하나에도 강경 대처하던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농림수산식품부가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30개월 이상 소에서 나온 고기도 안전하다”고 말하는 바람에 국민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방폐장 건설과 쇠고기 수입을 강행한 것도 닮은꼴이다. 부안군수가 2003년 7월11일 전격적으로 방폐장 유치를 선언하자 부안군의회는 즉각 위도 주민이 제출한 유치청원을 부결했는데도 당시 군수는 사흘 뒤 당당하게 산자부를 찾아가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도 여론조사 결과 부안군민의 62%가 방폐장 유치를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주민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계광장의 촛불문화제가 청와대로 향하는 가두시위대로 돌변한 것도 5월29일 일방적으로 발표된 장관고시가 도화선이 됐다. 1주일 전 이명박 대통령이 머리를 숙이며 발표한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이 결정적으로 의심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격렬한 가두시위가 전개되고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되는 유혈사태로 악화됐다. 부안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흘렀고 당시의 정책실패는 갈등예방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책수용성을 제고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 마련으로 발전했다. 비록 이 법은 국회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체계적으로 조정ㆍ관리하기 위해 2006년 12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 갈등조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2007년 5월부터는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는 등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에 역점을 둬왔다. 이에 비해 실용과 경쟁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는 참여와 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 형성에 인색해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는 국무조정실 등에 존재하던 갈등관리조직과 기구를 대거 축소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갈등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갈등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선진한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청와대나 내각의 인적쇄신 못지않게 지금은 갈등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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