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가계부실 은행경영 '빨간불'

'가계부실이 은행경영의 발목을 잡을 것인가.'국내 은행을 대표하는 국민은행의 주가가 지난 4일 41,500원으로 급락했다. 연중 최고치였던 68,600원에 비해서 39.5%나 하락한 셈이다. 신한ㆍ우리ㆍ조흥은행 등 대부분의 국내 은행 역시 주가가 30% 이상 동반 하락하는 등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최근 증시가 폭락장세를 연출했다고는 하지만 은행의 주가 하락은 그 폭이 더욱 깊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가는 경영의 현재와 미래를 반영한다. 상반기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호황기'에 접어든 듯한 은행주가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것은 '잠재적 경영불안'때문이다. 투자분석가들은 최근 증가 일로에 있는 가계대출과 신용카드의 연체율이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홍콩ㆍ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국내 은행들이 또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들은 '아직 심각하지 않다'는 내부 진단을 내리고 있다.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부문의 잠재 부실은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있으며 이미 은행 스스로가과거에 비해 강화된 위험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는 만큼 '위기'로 몰아붙이는 것은 성급하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이 여전히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은행들의 이 같은 낙관론에 근거한다. 투자자들이 너무 성급한 것인지, 아니면 은행들이 너무 느슨하게 대처하는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한 시중은행장은 "가계대출 위험에 대한 '시장의 경고'를 무시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소극적인 영업전략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치열한 현실 과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가계 대출과 추락하는 주가=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에만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6조2,000억원 증가하면서 국내은행의 총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9월말 현재 205조8,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시중 은행들의 가계대출 연체율과 카드연체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어 신용대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자금 연체율은 1.7%, 은행의 카드부문 연체율은 9.6%로 지난해말에 비해 크게 높아진 데 이어 3분기에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은행주가 급락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잠재부실에 대한 투자자들의 걱정이 반영된 것이다. 대표적인 소매은행인 국민은행 주가가 폭락했을 뿐 아니라 지난 5일 종가 기준으로 ▦신한금융지주 13,700원 ▦우리금융지주 4,735원 ▦조흥은행 4,800원 등으로 연중 최고가 대비 각각 35.22%, 33.21%, 33.80%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상황은 위기 아니다"=그러나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의 연체율(1%대)이 선진국 (3~4%대)보다는 아직은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또 주택가격의 급속한 상승으로 인한 버블의 우려는 있지만 외국 애널리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홍콩ㆍ일본처럼 가격이 폭락해 또 다른 경제위기를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수철 국민은행 IR팀장은 "시중은행들의 담보대출이 실제 부동산 거래가격의 60%수준을 한도로 하고 있어 버블이 꺼지더라도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며 "부동산가격이 하락해도 기업대출과 달리 회수율이 높아 은행의 경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형덕 우리금융지주회사 리스크관리 부장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경제위기 상황인 IMF관리 체제 하에서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20% 이상 하락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의 현 경제 상황으로 보아도 주택가격이 40~50%로 폭락하는 최악의 상태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시장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올 4ㆍ4분기 이후 주택시장은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또 신용카드 연체율 증가세가 연말을 고비로 꺾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양원 조흥은행 자본관리실장은 "과도한 유동성이 가계에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시중은행들이 신용카드의 연체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카드결제일을 4단계에서 6단계로 다변화시켜서 연체카드를 집중관리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말을 고비로 대부분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 진단 개인대출 신중·연체율 축소힘써야 금융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연체율 증가 추세를 누그러뜨리는 일이 은행경영의 핵심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부문의 연체율이 지난 상반기와 같은 증가세를 내년까지 지속하면 은행 경영악화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경기가 악화될 경우에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앞으로 최대 변수는 경기다. 시중은행들의 수익원이 가계대출ㆍ신용카드 대출에 집중돼있는 만큼 경기 악화는 필연적으로 은행 수익의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경기'라는 변수는 은행 스스로 통제 가능한 경영요인이 아니므로 보다 신중한 경영전략적 예측과 판단이 필요하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행들은 더 이상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가계대출의 위험성이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의 폭발력에 버금갈 정도로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개인대출에 대한 심사를 더욱 강화하고 카드 연체율을 낮추는 등 현재의 잠재부실 증가 추세를 하락세로 반전시키는 데 핵심 경영역량을 집중해야한다. 전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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