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충돌로 치닫던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간 갈등이 잠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갈등의 촉발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인도네시아 등 국빈방문과 ‘아세안+3 회의’참석을 위해 해외 순방길에 나섰으며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지난 1일 심야회동을 통해 당ㆍ청간의 갈등을 대통령 귀국 후까지 잠시 덮어두자고 ‘휴전’을 선언했다.
‘결별’까지 불사하겠다던 양측의 갈등이 잠시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지만 시각차가 현격해 결별 수순이 잠시 지연되는 정도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다양한 정계개편 관련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남겨진 선택은 결국 두 가지다. 갈등의 불씨를 남겨두더라도 당분간 청와대와의 동거를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여당 프리미엄을 과감히 버리고 현재의 당을 해체해 신당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수적으로는 후자 쪽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우세하다. 당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실용주의 계열과 재야파 계열 의원들이 통합신당론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측에 따르면 이들 통합신당 지지세력의 규모는 전체 139명 의원 중 1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명분 싸움에서는 청와대와 같이 가야 한다는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이 국가위기 상황은 돌보지 않고 통합신당 운운하며 권력투쟁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국민적 비판이 당 해체론(통합신당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 해체의 시기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 통합신당 추진은 너무 이르거나 다소 늦었다는 것이다.
‘너무 이르다’는 주장을 펼치는 쪽은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거론한다. 정상적으로 당의 진로에 대한 중지를 모아 신당 논의를 공식화할 수 있는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굳이 명분 없이 당을 서둘러 해체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신당 창당의 동조 세력으로 염두에 둔 민주당이 최근 독자 생존의 길을 선택하는 듯한 것으로 볼 때 신당 창당을 논의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주장한다. 고 건 전 총리 측의 최근 지지도 하락도 통합 신당론자들에게는 악재가 되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의 해체나 당내 제 정치세력간 결별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해체됐을 경우 누가 당에 남고 누가 떠나는가이다. 최근 노 대통령이 당적 포기 시사발언을 했을 당시만 해도 친노 계열을 포함한 계혁 성향 의원들이 탈당하고 중도 및 재야파가 남아 범여권의 정치세력과 통합신당을 꾸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다시 당적 유지 쪽으로 발언으로 바꾸고 친노 세력의 당사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제는 중도 및 재야파가 당을 뛰쳐나와 새 살림을 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마지막 남은 승부수를 던지며 정계개편의 판을 뒤엎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대통령의 4년 중임제와 정ㆍ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추진하면서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시도, 임기 말의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론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는 한나라당이 굳이 청와대와 손을 잡을 이유는 적어보인다. 또 이 카드를 쓸 경우 마지막 지지세력인 개혁세력마저 청와대를 외면해 노 대통령은 고립무원에 빠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