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가장자리는 왜 오톨도톨할까. 방어용이다. 동전을 조금씩 깎아 금이나 은을 모으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 동전에 ‘오톨도톨한 테두리(mill)’를 입히는 기술이 개발된 것은 1620년. 파리 조폐국의 수석 기술자였던 니콜라 브리오가 원조다.
본격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한 나라는 영국. 찰스 2세는 1661년 신기술이 들어간 주화를 제작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래도 동전을 깎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은의 시장 가격이 오르면 돈을 깎아내는 얌체가 더욱 늘어났다. 1686년 제조된 은화 한 자루의 무게가 1695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였다.
급기야 의회가 나섰다. 1696년 1월21일, 영국 의회는 윌리엄 3세의 요청으로 ‘주화의 불건전한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다. 내용은 가장자리가 깎여나간 돈의 유통 및 사용 금지.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상업활동이 정지되고 세금도 걷히지 않았다.
한심한 법을 폐기하라는 청원이 쏟아졌지만 의회는 그해 11월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다. ‘주화의 불건전한 상태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한 법’은 구화와 신화의 교환시한을 연장한 대신 낡은 주화의 사용을 아예 금지시켜버렸다. 새 돈의 은 함량이 높아져 납세자들의 부담도 늘어났지만 영국은 주화 건전화를 밀고 나갔다.
법이 나온 지 3년 만에 모든 동전은 가장자리가 오톨도톨한 ‘건전한 돈’으로 바뀌었다. 돈의 품질에 대한 믿음은 상품 매매와 유통을 촉진시키고 신용경제의 싹을 틔웠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꽃핀 이유를 ‘믿을 수 있는 돈, 화폐의 존엄성’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와 전쟁의 와중에서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완수한 주화 건전화 작업은 ‘대화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