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은 11일(현지시간) 각기 금융제재를 포함한 강력한 제재안을 본격 추진한다. 미 연방상원 외교위원회는 주요 러시아 인사와 기업들의 제재 명부 작성 등의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 EU도 이르면 이날 러시아 여행금지 및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인사 자산동결 같은 추가 제재조치를 논의할 것이라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밝혔다. 이는 앞서 EU가 지난 6일 내놓은 대러시아 3단계 제재 중 2단계다. 최종 단계는 대규모 경제제재로 예상된다.
서구권이 경제제재 카드를 꺼내든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완화에 올리가르히를 이용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많다. 폴 라이언 미 하원의원(공화, 오하이오)은 외국에서 많은 이권을 쥐고 있는 올리가르히를 옥죄면 그들이 푸틴을 압박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한발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갈수록 러시아 재벌의 해외자본·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점도 중요하다. 동유럽 경제전문 매체인 비즈니스뉴유럽에 따르면 지금도 외국 금융기관에서 차입을 추진하는 러시아 대기업이 10곳에 이른다.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는 미국의 엑손모빌과 손잡고 대대적인 북극 원유개발에 나선 참이다. 스베르방크 등 러시아 은행들도 동유럽권에 깊숙이 진출해 있다.
그러나 막상 제재가 임박했음에도 올리가르히들은 애만 태울 뿐 푸틴을 움직이기엔 무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최대 부호 중 한 명인 은행가 알렉산드르 레베데프는 "포브스 갑부명단에 올라 있는 러시아 기업가 10명을 최근 며칠간 만나봤는데 모두 안색이 창백했고 (푸틴의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도 "공개적으로는 침묵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하일 드비트리예프 전략연구센터 분석가는 "물론 재벌들은 화가 났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푸틴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항할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권에 당당히 맞서는 푸틴의 지지율이 2012년 취임 이후 가장 높은 상황에서 재벌들이 알아서 몸을 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정책결정권자도 해외 이권이 거의 없는 실로비키(권력기관 출신 친푸틴 인사)들로 채워져 올리가르히들의 손해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NYT는 덧붙였다. 특히 푸틴이 기업들의 국내투자를 강하게 요구해온 만큼 제재 때문에 외국에서 입을 손실에 대해 사정을 봐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