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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서울고법은 마이크로소프트(MS)ㆍ한글과컴퓨터 등 주요 소프트웨어(SW) 업체 7곳이 국내 중소기업 2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총 1억6,000만원이 넘는 배상판결을 내렸다. 불경기에 적지 않은 배상액 규모도 예상 밖이었지만 SW 정품 값을 온전히 물어줘야 한다는 결정에 영세업체들은 당혹해 했다. 저작권을 침해한 기업은 SW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사용한 기간에 비례한 것이 아니라 정품 소매가격을 전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로 중소업체에 만연해 있는 '불감증'에 경종을 울렸다.
불법복제 규제 강화로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경영진의 인식은 밑바닥 수준이다. 중소업체들은 직원들이 업무용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깔아 사용하면 그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개인적으로 설치한 소프트웨어에 회사가 손해를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불법복제, 기업 매출, 일자리 갉아먹어=업계에서는 국내 SW 불법복제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SW저작권협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3년간 불법복제 SW로 피해를 입은 MS·어도비시스템즈·한컴 등 상위 5개사의 총 피해액 규모는 3,240억원에 이른다. 지적재산권 침해를 당한 기업은 영업피해를 입고 민사소송을 통해 손실을 만회하는 데 집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송 대상 기업도 거액의 배상금으로 이익이 줄어 사업 규모 및 직원채용을 줄이게 된다. 기업들의 불법복제 SW 사용 묵인이 중소기업들의 개발의지를 꺾고 산업계 전반의 일자리마저 줄이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셈이다.
미국 SW 업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 BSA(사무용SW연합)는 최근 한국에서 정품 SW 사용을 1% 늘리면 국내총생산(GDP)이 약 1조6,000억원 늘어나는 반면 불법 SW 사용이 1% 올라가면 GDP 증가액이 약 3,700억원에 그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품 SW 사용이 기업의 법적ㆍ경제적 리스크를 줄여 궁극적으로 국가경제 효율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불법복제에 대한 낮은 인식에 비해 국내 지적재산권 보호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이 포함된 저작권법은 양벌 규정을 두고 있다. 기업 조직원이 저작권을 침해하면 직원 관리책임이 있는 법인·대표자에게 형사는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직원이 모르고 무단 사용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 셈이다.
또 저작권자가 불법행위를 직접 신고하는 친고죄가 원칙이지만 신고가 없더라도 검찰ㆍ경찰의 판단으로 직권수사, 처벌할 수 있는 '비(非)친고죄' 조항을 두고 있다. 영리 목적이고 상습적인 불법복제 범죄에 대해 비친고죄가 성립된 것. 더욱이 지난해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영리목적이거나 상습적이거나 둘 중 하나만 걸려도 직권수사할 수 있도록 처벌범위가 확대됐다.
김현숙 SW저작권협회 정책법률연구소장은 "일부 업체들이 검찰ㆍ경찰 단속을 당할 때까지 버티다가 단속되면 벌금만 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산"이라며 "벌금에다 민사소송에 의한 손해배상까지 당하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계도·처벌의지 병행돼야=글로벌 SW 기업들이 국내 기업ㆍ기관을 소송 먹잇감으로 삼을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CD 복사물처럼 전통적 의미의 불법복제 문제는 사라진 반면 온라인을 통한 SW 구매 및 업그레이드가 일반화되면서 저작권자들 입장에서 감시ㆍ적발은 더욱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MS가 우리나라 군이 프로그램을 무단 사용했다며 국방부에 사용료 2,100억원을 요구해 결국 양측 간 합의에 이른 사실이 한 예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국민소득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불법복제율이 선진국에 비해 아주 높다고 볼 수 없다"며 "다만 글로벌 기업들이 영업확대를 위해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법상 지적재산권 침해자에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거나 두 가지 처벌을 한꺼번에 내릴 수 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큰 것도 문제다. 대규모 불법복제 SW를 사용해도 불과 수백만원의 벌금만 부과되는 경우가 허다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저작권 특별사법경찰도 중소업체 계도에 나서지만 불경기를 이유로 단속이 느슨해지는 편"이라며 "검ㆍ경찰과의 단속 정보 공유가 미흡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불법복제와 기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인식개선이 급선무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이 SW를 관리가 필요한 자산으로 보고 반드시 정품을 사용한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소장은 "이를 위해 정품 SW 사용기업이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계도와 처벌을 병행하는 정부의 집행의지가 필요하다"며 "국제표준화기구가 정한 SW 자산관리 국제표준을 민간기업에 적용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공짜사용에 대한 불감증을 고쳐야 한다. 저작권법상 영리목적이 아닌 경우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복제물을 사용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위법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저작권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0명 3명꼴로 SW를 제외한 영화ㆍ게임ㆍ음악ㆍ방송 등 불법복제품을 온ㆍ오프라인상에서 이용했으며 이용건수는 무려 20억6,000만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사용자 4명 중 1명이 불법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고 있으며 불법 앱 시장 규모도 1,75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작권보호센터는 불법 앱에 대해서도 2015년부터 실질적 조사와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