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서울경제 43주년] (강한 증시 강한 경제) 2.네자리수 지수, 네번째 도전

지난 1989년 3월31일. 증권사 객장마다 직원과 투자자들이 서로 어우러져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하는 등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종합주가지수가 종가기준으로 1,003.31포인트를 기록하며 증시 사상 처음으로 `1,000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1,000포인트는 `네 자리 수대 진입`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함축하고 있었다. 주식투자자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1,000포인트 돌파는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데 이어 경제적으로도 이를 입증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대우증권 국제금융부장이었던 황건호 메리츠증권 사장은 “본사 라운지에서 파티가 열렸고 객장도 축제분위기 였다”며 “당시 주가가 계단식 상승 추세였고 상승강도도 워낙 강해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믿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몇 개월 가지 못했다. 그 해 9월 지수는 566.27포인트 까지 추락했고 12월에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주식을 사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이듬해인 90년 10월에는 전대미문의 `깡통계좌 일괄 반대매매`라는 극약처방까지 취해졌다. 이런 역사는 지난 10여년간 계속 반복되며 한국증시를 옥죄었다. 94년과 2000년에도 1,000포인트를 넘어섰지만 몇 개월 지나면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1,000포인트는 우리 증시의 `역사상 고점`이라는 아픈 상처로 남았다. ◇1,000포인트는 `마(魔)의 벽인가`=지금의 증시상황도 1,000포인트를 깨고 올라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전문가들은 없다. 다만 여건은 갖춰지고 있다는 진단뿐이다. 이유는 우리 증시가 자생력이 없고 오로지 외부변수에 의존하는 취약성 때문이다. 지난 89년에는 이른바 3저(低)라는 외부변수에다 증권ㆍ부동산에 대한 투기적 거래가 주가를 끌어올렸고 94년에는 미국 등에서 불어온 반도체 호황이 1,000고지를 넘보게 했다. 2000년에는 버블을 양산한 미국의 신경제가 상승 동력이었다. 1,000포인트를 돌파할 때마다 항상 앞서 미 증시 급등이라는 호재가 먼저 터졌다. 반대의 상황이 돼 미 증시가 조금만 흔들리면 우리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예외없이 다른 나라 증시보다 부심이 더 심했다. 우리 증시가 미국 증시와 경제만 쳐다보는 `천수답 증시`의 악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와 경제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우리 증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기업체질 강화와 함께 단타위주 거래ㆍ주주경시 풍토등 지금의 증시문화에 대한 개선작업이 이루어져야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 찾아온 기회=최근 증시를 둘러싼 환경은 낙관적인 요인들이 우세하다. 사상초유의 저금리시대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하반기에 경기회복의 전기까지 마련되면 주가가 추가상승해 올해는 아니어도 내년 초에는 1,000포인트를 넘볼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세를 탈 것으로 보여 종합주가지수는 850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기업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만 가미된다면 내년에는 다시 네자리 지수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중 부동자금, 저금리에 따른 주식투자 메리트 증가, 구조조정 성과에 비해 저평가된 주가,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 열풍 등을 감안하면 증시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분석이다. 특히 400조원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규모의 부동자금은 그 물꼬를 증시로만 돌리면 대세상승의 `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구재상 미래에셋투신운용 사장은 “부동산 투자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낮아지면서 주식의 매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분기 상장사의 ROE(자기자본이익률)는 3.06%로 연간기준으로는 10%에 육박하면서 채권수익률의 두 배를 넘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주식투자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외국인의 순매수 기조가 과거 1,000 돌파 때보다 강하다는 것도 우리 증시가 다시 한번 호기를 맞고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외국인은 올들어 지금까지 4조원 어치에 달하는 주식을 사들였다. 이는 과거 세 차례 1,000포인트를 기록했던 당시의 평균 순매수 금액인 1조2,222억원의 3배를 웃돈다. ◇상승이냐, 추락이냐=이런 호기를 잡지 못한다면 한국 증시는 다시 장기 박스권인 ` 500에서 1,000사이`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 증시가 다시 기로에 서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상승과 하락의 갈림길에서 증시가 상승쪽으로 방향을 잡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확산되는 갈등구조와 정치적 불안을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부동자금이 증시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경기침체라는 요인 외에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은 “증권제도분야에서는 집단소송제 도입과 분식회계 엄단 등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며 “하지만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1,000포인트 안착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종수 대우증권 사장은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인 6%대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규제완화와 경기부양책 등의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런 노력이 펼쳐져 경기회복이 가시화하면 역사적 고점돌파라는 대세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고]마이클 리드 프랭클린템플턴 투신운용 사장 한국증시가 가야할 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풍부해진 국제유동성으로 한국시장은 지수 1,000포인트 달성을 위한 주변 여건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한국의 신 정부 또한 동북아 지역의 금융 중심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정책비전을 제시하는 등 증시 주변여건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동북아 금융시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돼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인의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높다. 특히 주식투자에 관한 한 모두가 전문가인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가들의 주식투자 성과는 어떨까.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며 초초해 하는 투자자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는 마치 아마추어 권투선수와 프로 권투선수와 맞서 싸우는 듯 하다. 거대한 자금력과 경험을 가진 프로투자가와 상대하며 한번의 럭키 펀치를 노리지만 결국은 프로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개인들의 도박에 외면 당하는 기관은 이 같은 이유로 한국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식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이러한 `짝사랑`에 기인한다 금융시장관련 규제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에는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만 금융선진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규제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지 여부다. 선진국의 경우 시장에 대한 규제가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 처방만 시장에 제시될 뿐이다. 예측 가능성이 중시되는 금융산업의 특성상 일관성 없는 정책은 금융산업 발전에는 치명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한국 증시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와 회계 투명성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이른바 재벌 총수가 극히 작은 지분으로 전체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시장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진이 주주를 위한 소신 있는 기업경영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국기업의 회계 투명성에 대한 평가가 인색할 수 밖에 없다. 특히 SK글로벌 사태가 불거지면서 일부 재벌들의 잘못된 회계관행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외국인 투자 확대와 지수 상승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도 미흡하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주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더욱이 기업의 잉여 현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대주주의 지분구조가 높은 기업과 대기업군의 회사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회사는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기업군에 속하는 회사 역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모 기업이나 그룹 대주주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외국인 투자가들의 입장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투자처로 부상할 것으로 확신한다. 세금제도와 교육환경, 생활환경 등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은 외국인의 눈길 닿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국에서 5년째 생활하며 한국인의 강한 저력에 부러움과 함께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많다. 비단 필자뿐 아니라 한국을 근무지로 거쳐간 많은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된 아쉬움 또한 필자의 의견과 같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아쉬움은 한국 주식시장이 한국인의 저력과 성실함을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지 못해 전세계인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기업, 정부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앞서 지적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면 한국 주식시장은 미국의 10년 호황보다 더 길고 더욱 역동적인 호황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조영훈기자 dubbcho@sed.co.kr>

관련기사



조영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