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이마트 개점 10주년을 맞아 열린 신세계 기자간담회에서 구학서사장은 “이제 신세계는 회계기준 변경의 덕을 보기는 했지만 명실상부한 유통업계 정상에 등극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자들에게 “기사 작성시 신세계나 이마트를 먼저 써주면 고맙겠다”고 당부했다.
지난 12일, 롯데쇼핑이 옛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새로 문을 여는 영플라자 오픈 기자간담회가 끝날 무렵, 한 기자가 노병용 롯데미도파 대표에게 “신세계에 빼앗긴 유통업계 1위 자리를 탈환 할 복안이 있느냐”고 물었다.
노대표는 “글쎄요… 그건 내가 대답할 사안이 아니라 사장님께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답변 요구가 재차 이어지자 그는 “그런데 언제 신세계가 1위에 오른 적이 있나요?”라고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옆자리에 있던 다른 임원은 “신세계가 1위라는 주장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거들었다.
업계 1위와 상호 명기의 순서를 앞두고 업체의 수장들 까지 팔을 걷고 나서 신경전을 벌인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다.
임원들이 이럴진데 현업 부서인 홍보ㆍIR담당 직원들의 경쟁은 말할 필요 조차 없다.
업체들의 등쌀에 신문 등 매체들은 짜증이 날 정도다. 업체들은 나름대로 논리도 정연하다.
신세계는 `법대로 하자`다. “회계기준이 변경된 만큼 새로운 기준에 따라 1위 업체인 신세계가 제일 앞자리에 명기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백화점은 성장이 정체 국면인데 반해 할인점은 성장 가속이 붙고 있어 오는 2005년경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든 1등 업체가 된다”며“회계기준 변경 때문에 정상등극의 빛이 오히려 바랬다”는 생각이다.
`법대로 하자`는 건 롯데도 마찬가지다.
“신세계가 1등 하는 건 이마트 때문이니 할인점 순위는 양보하더라도 백화점 순위는 롯데가 앞서야 한다”는 논리다.
현대도 비슷한 생각이다. “신세계가 할인점 1등이면 할인점 1등이지, 왜 매출순위 세번째인 백화점 마저 얼렁뚱땅 1등인 체 하느냐”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요즘 홍보실 직원들이 가판 신문 보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업체 표기 순서”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 업계의 관계자는 “업계 순위는 업체의 자존심인 동시에 경영진이 임기중에 이뤄낸 치적”이라며 “그런 만큼 CEO들이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밤하늘에 샛별은 샛별인 척 안해도 지상 만물이 가장 밝은 줄 아는데, 유통업체들은 상대방 얼굴만 노려보느라 밤하늘을 올려다 볼 시간은 없는가 보다.
<우현석기자 hnskw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