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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세대 모델 탄생 이후 진보적 디자인·고성능 철학 유지
72년 나온 'XJ12' 시속225㎞ 자랑… 2003년엔 알루미늄 차체 첫 적용
2014년형 '뉴XJ' 모던한 외관에 수작업 가죽시트·원목 인테리어
VIP위한 프리미엄 편의사양 갖춰
재규어의 2014년형 '뉴XJ'는 표리부동하다. 외관은 모던함을 한껏 뽐내지만 실내 인테리어는 마치 20세기 초중반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클래식하다. 가죽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가죽 시트와 차 한 대당 한 그루의 나무를 사용해 색감·질감을 통일한다는 원목 내장재 인테리어, 클래식한 아날로그식 시계는 어지간한 브랜드의 기함급 세단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의 고급스러움을 자랑한다. '호화 요트에서 영감을 얻은 인테리어'라는 재규어 측의 설명대로다. 특히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이언 칼럼이 디자인한 외양은 '명불허전'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이 선호하는 차종인 만큼 뉴XJ는 뒷좌석에 VIP를 위한 각종 편의사양을 갖췄다. 뉴XJ 롱휠베이스 전 모델에 탑재된 프리미엄 비즈니스 클래스 리어 시트는 14.5도까지 각도 조절이 가능하다. 3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마사지 기능도 갖췄다. 또 뒷좌석에서의 업무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10.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스크린, 비즈니스 테이블, 전동식 햇빛 가리개 등이 '도로 위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완성해준다. 공간도 넉넉하다. 기존에도 1m가 넘었던 다리·머리 공간을 13㎜씩 늘렸다. 뒷좌석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 팔을 뻗어 조수석 시트를 조절할 필요도 없다. 뒷좌석에서 리모컨으로 조수석 시트를 움직이면 그만이다.
뛰어난 인테리어와 편의사양이 뉴XJ의 전부는 아니다. 재규어는 우주선·항공기 제작에 활용되는 기술을 빌려와 뉴XJ의 차체를 100%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알루미늄은 이어 붙이기가 어렵고 생산단가도 비싸지만 뛰어난 차체 강성과 가벼운 공차 중량을 보장하는 소재다. 덕분에 뉴XJ는 공차 중량을 경쟁모델 대비 150㎏ 이상 줄였고 큰 차체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주행성능을 자랑한다.
이런 뉴XJ의 우아한 외모와 성능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1세대 XJ의 탄생은 지난 196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규어의 창업자인 윌리엄 라이언스 경(卿)이 "최고의 재규어 모델"이라고 단언할 만큼 자신의 자동차 철학을 집약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XJ라는 모델명은 '실험적인 재규어(eXperimental Jaguar)'라는 당시 프로젝트명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재규어는 XJ에 당시 최첨단의 기술과 진보적인 디자인을 담아 경쟁사들을 놀라게 했다.
1972년 공개된 'XJ12'은 12기통 V12 엔진을 탑재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속 225㎞의 최고 속도를 냈다. 덕분에 XJ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차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XJ는 이후 2인승 스포츠 쿠페인 'XJ-S(1975년)' 등으로 확장됐고 1983년 6기통 엔진을 탑재한 'XJ6' 시리즈는 1986년 유럽시장에 이어 이듬해 미국시장에 소개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덕분에 1989년에는 10만대의 XJ6를 생산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재규어는 1980년대 후반 'XJ220' 같은 고성능 슈퍼카 등을 개발하기 위해 '재규어 스포츠'를 설립했다. 재규어의 고급세단에도 고성능 경주차의 유전자가 담겨 있는 것은 이처럼 성능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뉴XJ의 고성능 모델로 올 3월 출시된 'XJR'에서도 이 같은 면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더 넓어진 공기흡입구와 XJR 전용 전면부 스포츠 범퍼, 보닛 위의 트윈 슈퍼차저 방열공은 괜한 장식품이 아니라 성능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다. 5.0ℓ V8 슈퍼차저 엔진이 장착돼 최고 출력 550마력, 최대 토크 69.4㎏.m의 힘을 내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기까지 고작 4.6초가 걸린다.
1989년 미국 포드가 재규어를 인수했지만 재규어의 디자인·고성능 철학은 그대로 유지됐다. 1999년 칼럼을 디자인 총괄 디렉터로 영입한 재규어는 생산·연구개발 설비 투자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덕분에 XJ 시리즈의 결정판으로 평가 받는 2003년형 XJ를 통해 처음으로 100% 알루미늄 차체를 도입, 초경량과 고연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현재의 8세대 XJ는 이전 모델의 매력을 모던하게 계승한 칼럼의 우아한 디자인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주행성능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라이언스 경은 자동차를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진화하는 XJ를 보면 그 말이 괜한 과장처럼 들리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