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기업 입사시험 역사가 대세, 왜 ?] "과거 알아야 미래 예측·비전 공유 할 수 있다"

한국사 수능서 선택과목 되면서 국사 모르는 학생들 많이 배출

원활한 소통위해 역사관 평가

인문학 중요성과 맞물려 더 부각

삼성그룹의 공채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가 실시된 12일 서울 대치동 단대부고에서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국내외 80여곳의 고사장에서 치러진 SSAT에는 10만명가량이 응시했으며 이중 4,000~5,000명이 선발될 예정이다. /권욱기자

"논개가 여자였나요?"

올해 처음으로 입사 필기시험에 한국사를 도입하기로 한 A대기업의 김모 과장은 최근 후배 직원들과 얘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퇴근 후 저녁 식사자리에서 한 임원의 별명을 '논개'로 붙이기로 했는데 일부 후배들이 논개가 누군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해당 임원이 남자라는 점에서 "논개도 남자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윗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밑에 직원들이 알아들을 수나 있겠느냐"며 "단순 지식 유무 차원을 넘어 이 같은 현실이 원활한 조직 내 의사소통과 성과 창출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A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 기업들은 한국사와 세계사를 필수로 배웠던 상위 직급 직원들과 최근 입사한 하위 직원들 간에 역사를 둘러싸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가 돼버렸다. 최근 대기업들이 앞다퉈 입사시험에서 역사지식을 측정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분석된다. 특히 과거를 알아야 미래도 예측·전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날로 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헤쳐나가는데 직원들의 역사 및 인문학 소양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실패·성공에서 배운다=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입사시험에서 제시한 역사에세이 문제는 이 같은 기업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로마와 몽골에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략을 묻는 내용은 완성차 업계 세계 순위 5위에서 그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는 방안을 수험생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역사에서는 실패와 성공 사례를 모두 배울 수 있다"며 "이는 한 국가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기업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직원이 회사에도 애정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창업주의 노력과 그동안의 회사 성장기를 알아야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기업을 더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국가의 정통성과 선조들의 노력을 알게 된다"며 "기업도 마찬가지인데 역사와 세계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회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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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오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를 선택에서 필수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국사가 선택 과목으로 돼 있던 상당기간 동안 '역사 깜깜이 학생'이 많이 배출됐다. 실제 수능에서 한국사 선택률은 2005학년도 27%에서 2014학년도에는 7%로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입사한 직원들은 역사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고 인사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의 역사교육 강조 방침을 따른다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들이 직접 입사시험에서 지원자의 역사지식과 역사관을 측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SSAT에서도 역사 비중 더 높아져='삼성고시'로 통하는 삼성그룹의 직무적성검사(SSAT)에서도 역사 비중 강화 움직임은 확연히 드러났다. 수험생들에 따르면 12일 치러진 SSAT의 상식영역 50문제 중 10% 정도가 역사 문항이었다. 종이를 접어서 나오는 모양을 뒤집었을 때의 모습을 추론하라는 식의 시·공간 지각력 측정 문항도 어려웠지만 역사문제도 난도가 높았다는 평가다.

실제 문학·경제 분야를 다룬 각각의 지문이 나타내는 색을 유추해 어느 나라의 국기인지 맞추는 문항도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같은 서양 철학자의 활동시기 순서를 맞추는 문항처럼 한국사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문제도 출제됐다. 속오군·4군6진과 같은 역사적 용어에 등장하는 숫자가 같은 것끼리 짝짓는 문항도 있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는 "이제는 우리 기업이 선진국 기업을 따라잡는 수준을 탈피해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역사, 특히 한국사를 이해하는 것은 경쟁력 있는 고유의 성장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핵심 요소이며 앞으로도 기업의 인재 선발 과정에서 더욱 강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SSAT 시험은 상반기와 같이 언어·수리·추리·시사상식·상황판단력 등 5가지 항목에 걸쳐 5지선다형 160개 문항으로 출제됐다. SSAT 합격자는 10일 정도가 지나면 공개될 예정인데 고사장 당 2~3명 수준이었던 결시생이 예년보다 늘었다는 게 응시생들의 전언이다. 10만명가량의 응시자 중 8만~9만명가량이 실제 시험을 치른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적으로 SSAT 합격자 규모는 최종 선발인원의 2~3배 수준이다. 심층면접을 통과한 최종 합격자는 다음달 말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올 하반기에 4,000~5,000명가량을 선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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