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브랜드 선진국 되려면

왜 한국 패션업계에는 외국 브랜드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브랜드가 없을까. 대부분이 오랜 세월 동안 기껏 주문자부착생산(OEM) 수출만 해왔을 뿐이다. 부가가치가 클 리가 없다. 이제는 그나마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가 뒤를 이어받고 있다. 왜 브랜드 마케팅에 세계적으로 당당하게 성공을 거둔 사례를 볼 수 없는가. 원사ㆍ원단 제조능력이나 봉제능력이 부족해서인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화의 장벽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패션은 문화`라고 누누이 주장한 바 있다. 패션은 바로 한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고도의 문화적 축적과 배경 없이는 멋진 패션이 탄생하기 어렵다. 문화는 흐르는 강물과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패션도 그렇다. `패션` 하면 이탈리아가 연상될 정도로 이탈리아 패션이 유독 발달한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천재들이 쌓아놓은 미적 감각이 현재에 와서 이탈리아 패션의 기반이 됐다. 흔히들 “왜 로열티를 줘가면서 외국 브랜드로 장사하는가.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에 내놓으면 되지 않는가”하고 말한다. 이것은 패션이 문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입는 옷은 얼마든지 한국 브랜드로 가능하다. 또 요즘에 와서는 정서와 문화가 비슷한 아시아권까지는 어느 정도 장사에 성공 기미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팔 브랜드로는 아직까지 힘들다. 한국 자체 브랜드(Own Brand)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선진국 사람들이 좋아할 패션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문화 수준으로는 모자란 감이 있다.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문화적 요소가 적다. 한국 고유의 문화로 그들을 유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 고추장ㆍ된장이 좋다고 한들 그게 통하기는 어렵다. 프랑스만 해도 7,000만명의 인구가 있는데 그들은 된장국 냄새를 싫어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개구리 뒷다리 요리와 마늘빵이다. 고추장을 가져다 미국에 팔겠다는 발상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한국문화가 전세계에 영향을 주는 입장이 아닌 바에야 무리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체로 한국기업들은 시장조사에 인색하다. 다시 말하면 상품을 사줄 사람들의 취향이나 문화를 조사하고 투자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휠라 신발의 경우를 보자. 상품을 사줄 미국 사람들의 문화와 취향에 맞추기 위해 시장조사와 디자인은 휠라USA에서 한다. 제조는 인건비 등 제조비용이 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하고 휠라코리아는 신발 소재와 개발을 담당한다. 미국 속에서도 각 계층과 민족에 따라 그 취향을 맞춰나가면서 마케팅을 확산한다. 특히 스포츠 패션이 종종 브루클린이나 할렘의 흑인으로부터 생성돼 백인까지 확산되는 일은 재미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선진국 시장에 수출을 전제로 한 한국의 독자 브랜드 창조에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선진국의 좋은 브랜드를 사서 우리 것으로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 현명하다. 외국에 나가보면 경영부실로 시장에 나온 우수한 브랜드들이 수두룩하다. 그것을 사서 우리가 주인이 되면 된다. 꼭 처음부터 우리가 만든 것만이 우리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소유하면 그것도 우리 것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위험 부담도 작다. 그리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마케팅 능력과 사업수완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경영부실 브랜드를 사들여 세계의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만들면 거꾸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의 패션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우리나라 5대 효자산업으로 성장했다. 패션은 단순히 산업이 아니라 소비자 경향의 흐름을 짚어내는 문화산업이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산업 전체가 소비자의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가도록 하는 데 패션산업이 선두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패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브랜드 육성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한다면 우리나라도 브랜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윤윤수(휠라코리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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