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 소설가인 양헌석의 신작 소설이 문단에서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988년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를 펴내 평단의 호평과 함께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던 작가 양헌석이 13년이란 오랜 침묵을 깨고, `오랑캐꽃`(실천문학사 펴냄)을 발표했다.
작가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이 소설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분단시대의 풍상을 감각적인 필치로 풀어놓고 있다.
마지막까지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었던 아버지와, 그로 인해 유신정권하에서 엄혹한 연좌제에 억눌리면서도 끝내 당당하게 일어서는 주인공들이 양헌석의 물샐틈없는 문장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살아 난다.
작가는 유년시절이었던 1970년대부터 중년이 된 2000년대까지, 30년의 시공을 뛰어넘으면서 긴 이야기를 막힘 없이 풀어나간다. 작가의 자전소설이면서도 특이하게 주인공 남매 두 명의 시선이 교직하는 `오랑캐꽃`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다양한 분단 모순의 흔적들을 때로는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때로는 강한 유화 그림처럼 능숙한 솜씨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IMF 이후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에 의해 해외 이주의 길에 나서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 시대 삶의 고단함을 함께 짚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글과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한 때 사회주의자 가족에는 연좌제라는 것이 있었다. 과거의 것이 이념의 연좌제였다면, IMF 이후에는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고 온 국민들은 경제의 연좌제에 걸려 있다. 이제 삶의 어려움이 보다 보편적으로 바뀐 사회에서 분단 현실을 되돌아 본다.”
이 소설의 한쪽 축에는 적극적이고 강한 도전 정신을 가진 신문기자 출신의 여동생 윤지원이 있다. 또 다른 축에는 소극적이고 늘 도망치다가 막다른 골목에 갇히면 도박을 벌이는 오빠 윤기림이 놓여 있다. 이념이 분명한 삶의 장식과 너그럽지만 병적인 성품을 갖춘 두 주인공을 통해 복잡한 세상의 움직임을 진단한다.
만만치 않은 문장력과 상상력 속에서 독자들은 우리 시대의 아픔이 날로 새로운 상처를 더 하면서 깊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학인기자 leej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