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대기업들이 정부의 세금폭탄을 피해 잇따라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기로 하면서 '기업 엑소더스'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그리스 최대 상장기업인 코카콜라헬레닉(CCH)은 본사를 스위스로 옮기고 영국 런던증시에 새로 상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9일에는 그리스 대형 유제품 업체인 파예가 룩셈부르크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임을 밝혔다.
CCH와 파예가 그리스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정부가 예산확보를 위해 기업들에 지우는 과도한 세금부담이다. 그리스는 2010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5%로 인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CCH 지분 95%를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도 그리스의 조세정책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3년 전부터 본사이전을 요구해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전했다.
여기에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우려로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면서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이 날로 어려워지는 점도 기업들의 엑소더스를 부추기고 있다.
아타나시오스 필리포 최고경영자(CEO)는 룩셈부르크의 친기업적 조세환경과 은행 자금조달의 편의성 때문에 본사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글로벌시장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조치"라고 설명했다.
CCH의 경우 '그리스 디스카운트'의 영향을 받아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해 아테네증시에서 상장 폐지한 후 거래가 활발한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로 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6월 그리스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이유로 CCH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강등하기도 했다.
시가총액 57억유로로 아테네증시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CCH가 떠날 경우 주식시장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테네증시는 재정위기가 불거진 2007년 이후 거래량이 90%나 급감하면서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엑조틱의 그리스 주식담당 총책임자인 게오르그 조이스는 "(CCH의 본사 및 상장지 이전은) 그리스 시스템에 대한 매우 부정적 신호"라고 지적했다.
CCH는 세계 최대 음료업체 코카콜라가 지분 23%를 보유하고 있으며 코카콜라로부터 원액을 받아 28개국에서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는 보틀링(병입) 사업을 하고 있다. 코카콜라 보틀링 업체들 중에서는 세계 2위 규모다.
CCH와 파예의 본사이전을 계기로 다른 대기업들의 그리스 탈출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의 한 은행 고위관료는 FT에 "그리스의 다른 대기업들도 본사이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세금과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리스 기업들과 인재들이 떠나도록 등을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에 진출했던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이미 그리스 땅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여름 카르푸는 그리스 합작법인 지분을 현지 파트너 업체에 넘긴다고 밝혔으며 크레디아그리콜과 소시에테제네랄도 각각 현지 은행에 자회사를 매각하기 위해 협의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