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희미해지지만 꿈은 잃지 않았다. 16일 오후 2시 경기도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음악당에는 우렁찬 개선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연주 내내 지휘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던 청소년 합주단원들은 모두 시각 장애인. 이날 유일한 관객이자 강사로 참여한 5명의 독일 음악가들은 연신 ‘브라보’를 외치며 뜨겁게 격려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금관 5중주단 ‘하모닉 브라스’가 국립서울 맹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마스터클래스는 일반적으로 음악 영재들을 대상으로 열리지만 이번 행사는 ㈜이건산업의 제안으로 음악에 열정이 있는 장애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것. 12~18세로 구성된 시각장애 합주단원 20명이 1시간 동안 수업에 참여했다. 합주단이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 연주를 마치자 하모닉 브라스의 강의가 시작됐다. “개선행진곡을 연주할 때는 승리의 기쁨을 생각해 리듬에 실어야 해요. 강약을 살려서 해보세요.” 연습이 반복되면서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지자 강사들의 얼굴에도 희색이 돌았다. 이어서 트럼펫ㆍ트럼본 등 금관악기를 맡은 학생들을 위해 특별 레슨이 이어졌다. 바리톤을 들고 나온 김은비(15)양의 개인 연주를 들은 뒤, 호른 연주자 안드레아스 빈더 씨가 자세를 바로 잡아주며 설명했다. “아랫입술을 더 붙이고 불어야 해요. 윗입술을 너무 붙이면 소리의 떨림이 잘 전달 안되거든요.” 하모닉 브라스는 트럼본을 맡은 이선용(16) 군과 튜바를 연주하는 강재현(14)군에게는 각각 슬라이더 조작법과 호흡법에 대해 설명했다. 수업 말미에는 또 다시 ‘개선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트럼펫ㆍ트럼본ㆍ튜바ㆍ호른으로 구성된 하모닉 브라스의 시범 연주였다. 의도적으로 무대 양쪽 끝에 배치한 두 대의 트럼펫이 공간을 채운 가운데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리듬이 사방에 전달됐다. 공연 뒤 항상 악기를 기증하는 것으로 유명한 하모닉 브라스는 연주에 사용한 트럼펫을 서울 맹학교에 기증하며 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끝난 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김은비 양은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아저씨들처럼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