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채권 횡령 등 지난해 국민은행의 잇단 비리로 연말연시 금융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원들에 대한 통제 시스템 강화를 연이어 지시하자 금융계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행원들에 대한 근무 기간 상한제 강화 조치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지난해 각 은행에 '영업점은 3년, 본점은 4년'까지 근무 기간 상한선을 엄격히 적용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한 영업점이나 특정 업무에 장기간 근무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모럴헤저드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다.
여기에는 지난해 금융계를 뒤흔들어놨던 국민은행의 각종 비리·횡령 사고가 직원들의 장기 근속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KB금융지주의 자회사인 국민은행 도쿄지점은 최근 2년간 현지 기업들에 금액 쪼개기 형식으로 1,800억원대의 부당 대출을 해주고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직원은 국민주택채권 등 90억원을 횡령하며 금감원의 특별검사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행원들의 근무 기간 상한제 조치가 강화되면서 연말연시 인사가 한창 진행 중인 은행권 곳곳에서 잡음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리스크 관리, 정보기술(IT), 법률, 세무, 신탁, 자금 관리, 증권 운영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무는 예외를 적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두기는 했지만 '영업점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영업점의 기업고객파트나 프라이빗뱅킹(PB) 업무의 경우 고객 관리 차원에서 3년 이상 장기 근속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의 여신심사역은 업무 파악에만 최소 3년이 걸린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영업 측면에서 근무 기간 3년이 됐다고 무 자르듯 모든 행원들을 순환배치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국민은행 비리 사태의 근본 원인을 내부 통제 시스템 부재에서 찾지 않고 행원들의 장기 근속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근무 기간 상한제 강화 조치와 함께 은행원들은 금융 거래에도 제한을 받고 있다. 기존에는 은행 전산을 통해 행원 개인이 직접 본인의 계좌 이체나 입출금 처리가 가능했다. 이는 '일반 행원들이 은행에 근무하며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일반 고객들처럼 전표를 작성해 다른 행원들에게 업무 처리를 의뢰해야 한다. 개인의 금융정보가 동료들에게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행원들은 업무 시간 짬짬이 스마트뱅킹을 이용해 공과금 납부나 자녀들 학원비 결제 등 자잘한 금융 업무를 보고 있다.
시중은행 영업점의 한 관계자는 "은행 내부의 시스템을 개혁해 각종 비리·횡령 사건을 차단하려는 움직임보다 (최근 일련의 조치들은) 행원들의 통제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며 "일반 행원들을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