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현대차 110층 뚝섬 프로젝트 포기] 사업 8년 가까이 질질 … 투자하고 싶어도 국회·지자체서 딴죽

대한항공 한옥호텔 건립 등 줄줄이 좌초 우려

인근 부동산시장도 호재 사라져 찬바람 예고

현대자동차가 서울 성수동 뚝섬에 지으려고 했던 110층짜리 신사옥 조감도. 규제 탓에 8년 가까이 사업추진이 지연되자 현대차는 뚝섬 신사옥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조감도제공=서울시



현대자동차가 '숙원사업'이었던 뚝섬 110층 신사옥 개발계획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각종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관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부가 내세운 연 3.9%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경제혁신3개년계획에 규제완화의 방향뿐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실천 의지를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규제완화특별법'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왜 포기했나=현대자동차가 숙원사업인 뚝섬 110층 신사옥 개발계획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인허가권을 틀어쥔 서울시의 규제에 있다.

출발은 좋았다. 오세훈 전 시장이 직접 당시 국토해양부에 요청해 용도지역을 변경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닦았고 각종 타당성 조사와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용도변경의 조건으로 기부채납(개발 부지에 공원 등을 짓는 것) 비율을 48%까지 끌어올려 공공성 논란도 어느 정도 해소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오 전 시장은 한강변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내용의 일명 '한강르네상스'를 추진했는데 박 시장 취임 이후 '색깔 지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현대차에 전달됐다. 잠정중단 상태에 들어간 뚝섬 프로젝트는 서울시가 지난해 '초고층 건축 관리기준'을 내놓으면서 결정타를 입었다.

기준안은 상업기능이 몰려 있는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공장터였던 뚝섬 부지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투자계획은 초고층 빌딩을 세워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R&D) 기능 등을 통합한다는 것인데 서울시의 조건대로라면 규모를 맞추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8년 가까이 사업이 지연되며 여건이 달라진 것도 프로젝트 포기의 또 다른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최초 추진한 2006년만 해도 대형 오피스의 공실이 많지 않았고 경기흐름도 좋았지만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을 겪으며 사업 자체를 무리하게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규제만 제때 완화됐어도 진행됐을 사업이 결국 인허가의 벽에 막혀 좌초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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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투자 줄줄이 좌초하나=현대차의 사업포기가 기업투자 활성화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규제에 기업투자가 발목 잡힌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서다.

정부는 올해 기업의 투자를 늘려 내수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공언했으나 아직 시동을 걸 수 있는 뚜렷한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경복궁역 인근에 짓기로 한 7성급 한옥호텔 역시 결국 뚝섬 초고층 빌딩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관광진흥법을 개정하는 등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막상 인허가권을 쥔 곳은 서울시여서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가 묶이면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잠재성장률까지 낮아져 경제 전체의 체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미 우리 기업의 투자 미비는 심각한 수준에 접어들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내놓은 '투자여건 개선 시급하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2012년 4·4분기부터 2013년 3·4분기까지 약 2조9,213억원의 투자가 덜 집행됐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기업들이 지난 1년 동안 3조원가량을 더 투자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도 국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규제완화와 관련해 △규제별로 가중치를 두는 방안 △규제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규제를 하나 만들 때 그에 상응하는 비용의 규제를 없애는 방안 등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 규제별 가중치가 마련되면 가벼운 규제를 여러 건 없애는 것보다 무거운 규제 하나를 없애는 게 해당 부처 평가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보여주기 식' 규제완화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규제별 비용산정은 영국 등에서 도입한 제도인데 실제 마련 과정이 복잡해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영향=단기적으로는 인근 부동산 시장에서도 악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110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인근 상권이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집값도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특히 성수동 일대는 한강변 재개발 계획에 따라 초고층 아파트가 건립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마저도 어려워진 상태다. 성수동 B공인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유일한 호재가 사라지면 살아나는 듯했던 거래도 다시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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