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카드 연회비의 세계

100만원·200만원… 'VIP 잡기' 자존심 건 CEO들


현대 '블랙카드' 고액·초청 발급 차별화로 성공하자

경쟁사 우량고객 대상 상품 쏟아져… 혜택도 세분화


표절 논란 등 CEO 신경전… 연회비 책정 기준은 모호


지난 2005년 당시 소형사였던 현대카드는 연회비 100만원에 초청을 통해 발급해주는 방식의 우량고객(VIP) 대상 '블랙카드'를 선보였다. 비싼 연회비 책정에 초대 형식의 발급 방식을 접목하면서 VIP 고객들을 빠르게 유치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블랙카드를 신분의 상징으로 여겼고 현대카드는 블랙카드의 성공으로 업계에서 차별화를 이뤄냈다. 블랙카드가 반향을 일으키자 경쟁사들은 잇따라 100만원, 200만원짜리 VIP 대상 카드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은행에서 분리돼 나온 우리카드는 이달 초 '로얄블루' 카드와 로얄블루1000' 카드를 선보였다. 연회비가 각각 30만원, 100만원으로 엄청난 혜택들이 담겼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전면에 나서 '우리은행의 새로운 자존심'으로 프로모션하고 있다. 같은 줄기에서 하나SK카드도 은행에서 독립돼 나올 때 부족했던 상품군을 보완하기 위해 연회비 200만원짜리 '클럽1 카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연회비는 이처럼 카드사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최근에는 우량고객뿐만 아니라 연회비를 통해 일반 고객을 세분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연회비가 카드사 수익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자 연회비를 두고 최고경영자(CEO) 간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산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연회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면 차별화가 없어 연회비 책정 기준이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매스티지에서 VVIP까지…다양한 연회비의 세계=과거에는 카드업계에서 VIP 대상 카드는 비자·마스타카드에서 따온 시그니처·다이아몬드·플래티늄·인피니트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그쳤다. 연회비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이름에 맞춰 교과서적으로 책정됐다. 대체로 VIP 카드란 발급 회사 이름을 본뜬 '○○(회사명)시그니처카드'라는 이름으로 발급되던 시절이었다. 사실상 카드사별로 VIP 고객군에 대한 차별화가 없었던 셈이다.


VIP 고객군에 대한 차별화가 시작된 것은 2005년 현대카드의 '블랙카드'가 출시되면서부터다. 블랙카드라는 상품명 자체가 '○○다이아몬드카드'라는 비자·마스타카드가 정해준 VIP 카드 이름 프레임을 벗어던진 신선한 시도였다. 최초 100만원을 연회비 상한으로 했다가 경쟁 카드사들이 뒤따라오자 최대 200만원까지 높이기도 했다. 가입 고객도 '신청 후 발급'이 아닌 '초대 후 발급' 형식을 갖췄다. 이때부터 경쟁사들도 현대카드의 VIP 고객군 정책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삼성 라움0카드, KB국민 테제카드 같은 VIP상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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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연회비 책정 트랜드는 VIP고객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일반 우량 고객군으로 대상이 바뀌고 있다. 대체로 1만원·10만원·20만원·50만원·100만원·200만원 식으로 딱딱하게 분류됐던 연회비가 5만원·7만원·12만원·22만원 등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카드M에서 M2·M3카드가 연달아 발급된다든가 삼성카드1에서 삼성카드1+, 농협샵핑카드에서 농협샵핑플러스카드라는 이름으로 나열되고 있다. 기존 카드에 숫자만 올라가거나 플러스가 달리게 되면 연회비는 비싸지고 혜택은 추가로 늘어나는 식으로 변화를 준 셈이다.

카드업계에서는 대체로 100만원이 넘는 카드를 VIP 대상, 200만원이 넘으면 초우량고객(VVIP)대상 상품군이라고 설명한다. 10만~20만원 상당의 카드는 '매스티지(Masstige)' 상품군이다.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을 조합한 신조어로 VIP 카드에 비해 비교적 값이 저렴하지만 PP(Priority Pass) 카드를 제공하거나 항공마일리지를 일반 카드보다 더 쌓아주는 등 다량의 혜택을 제공한다. 나머지는 일반 상품군으로 분류된다.

◇연회비, CEO의 '자존심'…하지만 책정 기준은 '모호'=연회비는 CEO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산물이기도 하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알파벳으로 정리한 상품군을 선보인 이래 최치훈 전 삼성카드 사장이 숫자로 정리한 상품군으로 맞불을 놓자 자존심 대결은 시작됐다.

2012년 현대카드는 '삼성카드4'가 '현대카드 제로(0)' 상품을 표절했다며 내용증명까지 삼성 측에 발송했다. 두 상품은 상품 혜택뿐만 아니라 국내전용(5,000원), 국내외겸용(1만원) 연회비가 동일하다. 현대카드는 "삼성카드4는 명백하게 현대카드 제로를 표절하고 있으며 발급을 즉각 중단하는 동시에 더 이상의 재발방지를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최 전 사장은 사석에서 표절 논란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졌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회비 책정의 일차적 기준을 혜택의 총량으로 꼽는다. 혜택이 많이 담길수록 연회비는 비싸진다.

하지만 연회비가 매스티지 상품 이상으로 넘어가면 혜택의 차별화는 희석된다. 카드사들은 비싼 연회비 상당의 바우처를 제공하거나 카드 발급의 진입 장벽을 만들면서 이 간격을 메운다. 연회비 책정이 사실상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셈이다. 연회비가 싼 일반 고객에게 혜택을 줄이면서 우량고객에게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고객들의 수요는 항시 변화한다. 연회비를 다각화해 고객들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 왜 200만원이 가장 비싼 연회비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회사별로 연회비 책정의 특징은 살펴볼 수 있다. 대체로 은행계 카드사들의 연회비는 낮게 책정하고 기업계는 높게 설정한다는 게 정설이다. 창구 내방 고객을 상대하는 은행계와 다이렉트·카드모집인 등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전업계의 고객군이 다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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