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25개 자치구(구청)가 예산부족으로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기초연금 등을 지급하지 못하는 이른바 '복지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와 구청장들이 국비지원 확대를 직접 요구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서울 성동·중랑·금천구는 당장 다음달부터 기초연금 지급도 불가능해 정부나 시 차원의 긴급 예산지원이 없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서울시와 구청장협의회는 12일 서울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재정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성명'을 통해 국비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참석한 구청장들은 "오죽했으면 구청장들이 나서 정부에 예산지원을 호소하겠느냐"며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다음달 지급할 기초연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자치구는 중랑·금천·성동·광진구 등 11개에 달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남 3구를 제외하면 절반을 차지한다.
자치구들이 예산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7월부터 시작된 기초연금 범위와 연금지급액이 예상보다 확대됐기 때문이다. 특히 기초연금법은 시행 여부를 놓고 국회에서 공방을 벌이다 갑자기 올해 초에 급히 결정되면서 지난해 예산에 미리 반영해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자치구들이 전혀 대비하지 못해 이 같은 불일치가 생겨났다.
여기다 무상보육 예산도 당초 정부가 40%까지 지원해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35%만 해주다 보니 그만큼 예산부족분이 발생했다. 특히 장기간 세수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자치구의 재정난은 계속 악화돼왔다.
8월 말 현재 자치구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복지예산 부족분은 1,15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기초연금 예산 부족액은 607억원으로 절반을 넘었고 무상보육 예산 부족액은 461억원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저소득층이나 어린이 예방접종 예산도 86억원이나 부족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지급할 예산부족분까지 감안하면 규모는 더 늘어난다.
노현송 구청장협의회장(강서구청장)은 "자치구의 재정상황은 정부의 보편적 복지확대로 도시기반시설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소한의 안전관리 예산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기본적 복지예산 부족분 확보 방안마저 없어 복지 디폴트를 고민해야 하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에 따라 기초연금 자치구 예산 부족분 607억원의 전액 국비 지원과 더불어 무상보육 국고보조율을 5%포인트 인상해야 하며 현재 11%인 지방소비세율을 5%포인트 올린 뒤 장기적으로 2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서울시도 하반기 자치구의 재정위기를 막기 위해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국가 복지사업에 대한 올해 시비 부담분을 자치구에 조기 배정하는 등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없으면 내년에도 똑같은 사태가 되풀이되는 등 악순환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의승 서울시 행정국장은 "어르신과 아동에 대한 복지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시 예산을 자치구에 조기 배정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보편적 복지 확대에 따른 자치구의 재정난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