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다자무역체제 적극 활용하자”/김철수 WTO사무차장(특별기고)

◎컬러TV 제소 통상마찰 새 해결방식/금융산업 경쟁력 향상 무엇보다 긴요김철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전상공자원부 장관)이 『서울경제신문 창간 3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축하메시지와 함께 「WTO 2년반의 성과와 우리의 과제」에 대해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우리나라는 최근 미국의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반덤핑조치에 항의, WTO에 이의 시정을 위한 제소를 한바 있고, 조만간 반도체 D램에 대해서도 제소를 할 예정으로 있어 WTO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김사무차장이 보내온 기고는 세계무역기구의 동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우리의 대응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대단하다. 다음은 김사무차장의 기고 전문.【편집자주】 <그간의 성과> WTO가 출범한지 벌써 2년반. 성과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WTO가 국제가구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인 점을 들어야겠다. 발족당시 70여개에 불과했던 회원국 수가 2년여만에 1백31개국으로 거의 두배로 늘어났고 현재 29개국이 가입을 신청중이므로 2∼3년 후에는 회원국수가 1백60개국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상 무역을 영위하는 모든 나라가 WTO의 회원국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회원국 수가 늘어나는 사실 자체가 세계각국이 그만큼 WTO를 중요시하고 그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두번째 성과로는 WTO 협정이 대체적으로 순조롭게 이행되어온 점을 꼽을 수 있다. 일부 개발도상국이 자국의 법령을 WTO 협정과 일치시켜야 하는 의무와 각종 통보의무를 이행하는데 있어서는 다소 부진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각 회원국들의 시장개방 약속은 거의 완벽하게 이행되고 있다. 셋째, WTO 분쟁해결기구의 활성화도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WTO의 분쟁해결기구에는 전례없이 많은 제소가 있는 반면 과거의 쌍무주의에 입각한 일방적인 무역조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현재 약 1백건에 가까운 분쟁이 계류중인데 과거 GATT(관세무역 일반협정)시절에는 선진국들이 주로 이를 활용해 왔으나 이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또는 개발도상국간의 분쟁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는 WTO가 몇몇 경제대국의 전유물같이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씻어내고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WTO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에도 무역자유화를 주도하는 무역협상의 장으로서 상시 기능하고 있다. 그 중요한 예로 금년 상반기중에 타결한 기본통신 분야와 정부기술 분야의 자유화 협상을 들 수 있다. 이 두 분야의 협상은 범세계적으로 약 1조달러에 해당하는 교역을 획기적으로 자유화한다는 차원에서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라고 부를 만하다. <앞으로의 과제> WTO의 당면 과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금년말까지 시한을 정한 금융분야의 협상을 들 수 있다. 통신과 정보기술 부문이 세계무역의 신경이라면 금융서비스는 혈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개도국의 금융시장 교란에서 볼 수 있듯이 급격한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자간 규범에 의해 금융시장을 자유화하는 것이 국제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각국 금융기관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시켜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특히 금융산업의 경쟁력 저하는 금융산업 자체의 위기를 초래할 뿐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 주름살을 가져온다는 점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경우에도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최소한 제조업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노력이 긴요하다. 과거 국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역자유화를 약속하고 이행한 것이 결국 우리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듯이 이 분야에서의 적절한 대외적 약속은 우리 금융산업 발전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 신규 가입문제도 WTO의 주요과제이다. 중국의 10년간에 걸친 가입협상이 이제 최종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많은 회원국들이 중국의 조속한 가입을 원하고 있으므로 내년중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밖에 러시아도 내년중에는 가입을 위한 본격적인 시장개방 협상을 하게 될 것이고, 베트남·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가입협상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가입협상으로 이들 국가의 시장개방 정도가 정해지게 된다. 그리고 가입대상국들이 대부분 우리와는 이미 상당한 교역 또는 경제협력관계를 갖고 잠재력 또한 큰 국가들이므로, 우리로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가입협상에 임해야 하겠다. 또한 금년 10월에는 WTO에서 처음으로 최빈개도국지원을 위한 고위급회의가 개최되어, 세계무역활성화의 큰 혜택을 못받고 있는 최빈개도국들을 무역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최빈국으로부터 30여년만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까지 발전한 나라가 세계역사상 없는 점을 감안할 때, 무역을 통해 가능했던 우리의 성장경험을 최빈국들과 공유하고 이들 국가를 지원하는 구체적인 지원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2000년을 전후해서는 WTO협정에 의해 서비스· 농산물 분야의 추가 시장개방 협상, 분쟁해결 기능의 재검토 등 주요한 협상들이 속속 개시될 것이므로 이와 관련한 준비작업이 곧 시작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이를 「2000년대를 시작하는 새로운 라운드(Millenium Round)」라고도 부르는데, 그 명칭에 관계없이 우리로서는 어느 분야의 협상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전개시켜 갈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나가야겠다. <기여와 제안> 지금 우리나라는 경상수지적자, 대형부도에 따른 연쇄자금난, 국내정치 일정 등으로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경제의 세계화 현상 속에서 WTO에서 정해지는 사항들이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다행히 WTO 발족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의 교역대국답게 다자무역체제에서의 역할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증대시켜 왔다. 예를 들어 지역무역협정위원회의 설치와 그 후의 토의과정에 크게 기여했고, 기본통신과 정보기술분야의 자유화협정 타결과정에서도 적절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컬러TV 반덤핑 문제를 WTO 분쟁해결기구로 가져가기로 결정한 것도, 그것이 쌍무적 해결보다 더 바람직하고 대국민설득이 용이한 방안이며 통상마찰의 새로운 해결양식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우리에게는 앞에 언급했듯이 2000년 전후의 농산물, 서비스 협상을 비롯하여 중요한 다자협상이 산적해 있다. 또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자무역체제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급증할 것이다. 다자협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우리 입장을 WTO 규범 제정과정에서 제대로 반영시키자면 논의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고자 하거나 수성에만 치중하는 자세보다는 적절하게 기여 해가면서 건설적인 제안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WTO에서 상응한 기여를 하면서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를 주도해 나가자면, 전문성과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춘 전문가집단의 육성이 관건이다. 이는 국민 모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제도적 뒷받침을 해나갈 때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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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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