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올바른 개혁의 길

모든 언어는 일종의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옳고 좋은 뜻을 담고 있는 말일수록 지니고 있는 힘도 크다. 가령 개혁이라는 말만큼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말도 드물 것이다. 내용을 따지기 전에 개혁이라는 말 그 자체는 주위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낡은 것을 부정하고 보다 새롭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말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개혁적이라는 표현 속에는 시대착오적이고 진부하다는 이미지가 담겨 있다. 정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내용은 둘째 치고 일단 개혁을 부르짖는 쪽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개혁과 관련된 긍정적인 경험과 역사적인 사실도 개혁이라는 말의 매력을 높인다. ‘영국병’을 고친 대처의 개혁, ‘악의 제국’ 소련의 몰락을 가져온 고르바초프의 개방과 개혁 등은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역사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개혁이었다. 20세기 이후 정치무대에서 개혁이 가장 인기 있는 용어가 됐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정치성 개혁, 갈등·혼란만 양산 우리나라에서도 개혁만큼 인기 있는 정치적인 용어도 드물다. 특히 권위주의 해체와 함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개혁이 동원됐다. 오랫동안 당연시돼온 제도와 관행에 개혁의 화살이 퍼부어지면서 구체제의 수혜자였던 정치권력ㆍ재벌ㆍ관료 등이 수난을 겪기 일쑤였다. 어느 원로정치인이 ‘토끼를 잡고 나니 사냥개를 삶는구나’라는 뜻의 토사구팽(兎死拘烹)이라는 어려운 한자성어를 유행시킨 것도 이때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개혁피로증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이상에 얽매이거나 개혁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혼란이 증폭되자 아예 개혁을 외면하려는 풍조가 생겨났던 것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복지부동(服地不動)이니, 복지안동(服地眼動)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 들어서는 국민의 정부 역시 위기극복의 명분으로 개혁과 구조조정을 국정의 핵심원리로 활용했다. 특히 양적 확대가 최우선 목표였던 개발연대에 쌓인 부실과 비효율의 퇴적층을 걷어내고 글로벌화와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확립이 개혁의 목표였다. 참여정부에서도 개혁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은 여전하다. 개혁을 혁신이라 불러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참여정부 이후 개혁을 둘러싼 구도는 과거에 비해 복잡해졌다는 인상을 준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기득권층과 개혁세력 등으로 구분짓기도 한다. 개혁대상을 설정하고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를 놓고 다양한 시각과 해법이 제시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처럼 힘의 원천인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너지고 다원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어느 일방의 주장이 일사불란하게 관철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구성원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분열과 갈등이 지나치게 증폭되는 가운데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문제, 복지대책, 부동산대책, 조세와 재정정책, 안보와 북한문제 등 모든 현안에서 지리한 공방전만 계속되고 있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서로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형국이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 신뢰해야 전체가 아닌 부분을 위한 주장, 반대를 위한 반대가 너무 많다. 가령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경우 인구와 경제력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는 병적인 집중화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부동산대책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부동산 투기라는 개발연대의 망령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우선 선진국의 몇 분의 일도 되지 않는 보유세를 유지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큰소리친 과거 정권의 기만적인 부동산정책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한단계 올라서기 위해서 개혁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안 없이 개혁을 위한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과거 숱한 개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와 열린 마음, 그리고 상호신뢰가 있을 때 개혁은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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