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LH가 재판에 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지난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구 공익사업법상 택지개발사업 시행자가 이주대책 대상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생활기본시설에 대한 범위를 사실상 축소하는 취지의 새 판례를 만들었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건은 고법으로 파기 환송됐고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법리상으로는' 특별분양 대상자들에게 많게는 수십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LH가 파기환송심을 거쳐 이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될까. 대답은 '아니다' 쪽에 가깝다. LH가 1∙2심의 재판과정에 보여준 태도를 고려하면 LH는 결국 이 비용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LH는 소송이 처음 시작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약 8년간 단 한 번도 아파트 건설비용을 재판부에 소명하지 않았다. 1∙2심을 맡은 판사들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택지조성금액 등 아파트 건설비용 내역을 소명하라고 수차에 걸쳐 문서 제출 명령을 했지만 LH는 택지소지가격∙택지조성비∙건축비 등 택지개발지구 내 특별 분양자에게 받을 수 있는 정당한 아파트 건설비용을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약 2억원의 분양계약서를 받은 특별 분양자들은 정당한 분양금액이 5,900여만원이라 주장했다. LH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재판부는 결국 LH의 소명거부사실을 판결문에 적시하고 원고인 특별 분양자들의 주장을 인용했다. 아파트 분양 가격에 들어있는 각종 비용내역을 건설사가 공개하지 않는다면 재판부로서는 도리가 없다. 원고가 5,900여만원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피고인 LH가 원고 주장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객관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는 모든 민사재판의 원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법률심과 더불어 '사실심리'를 다시 시작할 파기환송심이다. 이번에도 LH가 비용을 소명하지 않는다면 재판부의 판단은 원고의 비용주장에 근거를 둘 것이다. 대법원이 법리상 LH의 손을 들어줬지만 파기환송심을 거쳐 LH가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여전히 LH의 선택에 달려 있다. LH가 파기환송심에서 분양원가 및 각종 항목의 비용을 공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패소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04년 LH의 아파트 분양가는 원고가 주장하는 '정당한 분양가의 3.5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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