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경제의 거울이다.”
지난 2월 무디스가 국가 신용등급전망을 두 단계나 하향 조정한데 이어 3월에 SK사태가 터지면서 종합주가지수는 3월17일 연중 최저치인 515.24로 곤두박질쳤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고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불투명성이 제거되면서 주가가 살아나기 시작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600선을 돌파했다. 이후 SK사태와 이라크전쟁ㆍ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ㆍ북핵 문제 등 경제의 암초들이 하나 둘 걷히면서 8월1일 연중 최고치인 727.26을 기록했다.
단기적인 경기흐름과 중장기적인 경제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 더구나 증시흐름과는 다소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증시와 경제흐름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주식투자시 단순 재료에 의한 일시적 수급에 앞서 경기동향이나 환율ㆍ금리ㆍ물가 등 경제 전반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근모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주가는 재료나 수급 보다는 경기 등 장기 트렌드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경기ㆍ환율ㆍ 금리ㆍ물가 등 각종 국내외 경제 변수에 대한 해석 능력을 키워야 시장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이 경제의 큰 흐름을 읽으면, 각종 업종의 부침을 남들보다 일찍 예측하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해 한 발 앞선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충식 SK증권 상무는 “직장 여성 인구의 증가와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의 본격적인 사회 진입이라는 인구 통계학적 트렌드를 간파한 일부 투자자들은 1982~1986년 미국 시장에서 여성 의류 소매업체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ㆍ경제지표는 주가의 바로미터=경기ㆍ환율ㆍ금리 등 경제변수나 고용동향ㆍ소비자 신뢰지수 등 각종 경기지표는 투자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다. 기업들은 각종 지표에 따라 향후 투자 규모나 사원채용 등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고, 투자자들은 개별 기업들의 실적을 가늠할 수 있게 돼 시장에 직접적인 파급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일례로 1990~1991년 미국 증시는 원유 가격 급등에 의한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이 겹치면서 다우 및 나스닥지수는 최고치 대비 각각 29%ㆍ37.2% 하락했다. 국내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 은행이 위기에 처하면서 금리가 일순 30%까지 급등하자, 은행에 돈이 몰리며 종합주가지수가 280선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이후 금리가 꾸준히 떨어져 10%아래로 내려간 이듬해에는 다시 뭉칫돈이 주식을 찾게 되고 결국 지수가 1,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충식 SK증권 상무는 “경기선행지수를 비롯해 교역 조건을 결정짓는 환율 및 유가 동향과 반도체 가격 등 실질 경제 지표와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 지표인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소비자 신뢰지수 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투자지표”라고 말했다.
증시가 글로벌화되면서 미국 경제 동향에 대한 관심도 필수요소가 됐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야 외국인 펀드 자금이 활발하게 들어오게 되고, 우리 기업들의 수출도 늘어 수출 주력 기업의 주가도 오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앨런 그린스펀 미 FRB 의장은 상업 및 기업대출(CIL)지표를 통해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간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신 브릿지 증권 상무는 “미국의 월간 실업률 등 고용지표와 공급자관리협회에서 발표되는 제조업 및 서비스 지수 등은 실물경제의 회복 여부를 가늠하는 데 유용하다”고 지적했다.
◇업종별 동향 파악도 필수=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2월11일 연중 최저치인 25만9,500원에서 8월5일 연중 최고치인 42만9,500원까지 치솟았다. 삼성전자 이 같은 주가 움직임은 세계반도체 경기를 가늠하는 미국 필라델피아지수와 동행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지수는 2월7일 최저치에서 7월14일 최고치를 기록했다.
컨테이너 운임이 사상 최고수준으로 오르자, 한진해운 주가는 3월 4,000원대에서 8월12일 1만1,650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현대상선도 1,000원대에서 3,000원대로 상승했다. 또 사상 최대의 수주실적으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도 올 저점 대비 60% 이상 올랐다.
월가의 최고 투자 전력가로 꼽히는 윌리엄 오닐은 자신의 한 저서에서 “투자자는 첨단 기술주는 소매 관련주에 비해 주가 변동성이 2.5배 정도 높다는 식으로 자신이 보유한 종목의 업종의 전망이나 비전, 특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용백 대신증권 이사는 “반도체(D램가격), 운송(운임지수) 등 각 업종마다 경기의 부침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매매 타이밍에 대한 하나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헬스 케어(Health Care) 산업이나 유전ㆍ생명 공학, 인터넷 및 e-커머스(e-commerce)ㆍ레이저 기술ㆍ전자 통신ㆍ새로운 개념의 서비스 산업 등이 주도 업종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근모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간단한 예로 고령화 사회로 진행되면 제조업이 퇴조하고 금융이나 서비스업종의 부상을 예상해 볼 수 있다”며 “경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흐름을 읽어 내는 능력을 키워야 투자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고용동향ㆍ기업경기실사지수 등
거시경제지표를 챙겨라
2000년 3월10일. 나스닥 지수가 사상 처음 5,000포인트를 넘자 미국 증시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온갖 호재가 넘쳐흘렀고 증시 전망은 장밋빛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4월2일 마이크로소프트와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 협상이 결렬되자, 3일 나스닥 지수는 349포인트 하락했다. 4월14일에는 소비자물가지수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정부 발표로 증시는 얼어붙었고 나스닥 지수는 다시 355포인트 빠졌다. 5월16일 미연방준비위원회(FRB)가 대출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자, 나스닥 지수는 다시 큰 폭으로 곤두박질쳤다. 3개월만에 나스닥은 40% 이상 폭락했고, 투자자들은 수십억 달러의 평가손실을 입었다.
미국의 피터 나바로 교수는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제목의 책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나바로 교수는 이 책에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거시경제의 힘을 무시하고는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식이 쉽지 않은 것은 종목과 시장 등 두가지 면에서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종목위험은 수익이 많이 날 가능성이 있고, 주가가 저평가돼있는 종목에 투자함으로써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위험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시장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거시경제 지표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된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발표되는 경제지표를 챙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장에 대한 거시 전망이 가능해지며, 이에 맞춰 종목을 고를 경우 이전보다 훨씬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충고한다.
현재 국내외에서 발표되는 경제지표는 수도 없이 많다. 이 가운데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표는 환율ㆍ금리 등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 대략 40여개 정도가 있다.
주요 국내 지표로는
▲경제활동인구조사(실업률)
▲국내총생산
▲기업경기실사지수(전경련BSI)
▲기업경기조사(한은 BSI)
▲산업활동동향
▲생산자 물가
▲소비자 물가
▲소비자전망지수(통계청 CSI)
▲수출입 물가
▲수출입 실적 등이 있다.
국외 지표로는
▲경상수지
▲고용동향
▲공장주문
▲내구재 신규주문
▲도매판매
▲미시건 소비자신뢰지수
▲산업생산
▲소매판매
▲소비자 물가
▲소비자 신용
▲ISM 서비스업 지수
▲ISM 제조업 지수
▲컨퍼런스보드 경기선행지수
▲컨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 등이 있다.
지난 7월29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과 투자는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소비는 여전히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영향 받아 백화점, 카드 등 소비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회사들의 주가는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11일 산업자원부가 7월 유통업체 매출동향을 발표하자 이들 회사의 주가는 급락했다. 7월 매출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병포 현대투신운용 사장은 “신세계 주가는 통계청 발표가 나온 뒤 이틀 동안 상승하며, 연중최고치를 기록한 뒤 빠지기 시작했다”며 “지표를 챙긴 투자자라면 그 전에 처분해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기자,한기석기자 s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