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인 이 시형 박사는 `극장형 사회, 연기적 인간`이란 강연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배우보다 더 화려해지고 패션, 미용, 오락과 관련된 산업이 호황을 누리며 그런 장소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을 열거하며, 우리 사회가 간판 중심, 외모 중심의 `극장형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길거리에 넘쳐 나는 영화관, 미용실, 비디오방, 노래방, 나이트 클럽, 극장식 카페 등을 볼 때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런 반면 공연 예술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은 열악한 극장 환경과 부족한 극장 수 때문에 예술 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 우리 나라의 극장 수나 극장 환경은 유럽이나 일본 등과 비교할 때 열악하기 그지없다.
극장이란 한 사회의 문화적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예술적 공간이다. 그곳은 사치와 허영의 장소가 아니라 진실과 아름다움으로 치장된 곳이며 오락과 환락의 장소가 아니라 창조와 영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무대 예술인들은 그 곳을 신성하게 여기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기꺼이 무대라는 제단에 바친다. 그러나 이런 꿈을 가진 예술가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꿈을 가지고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날이 갈수록 소외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케네디 센터의 사장인 마이클 카이저는 미국의 공연 예술이 만성적인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해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공연 예술을 살리는 법`이라는 글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기획 공연을 개발해 무대에 올려야 한다.
▲비중있는 공연을 기획해 최상의 결과를 낳으려면 전문적인 예술행정가와 잘 훈련된 예술 경영인이 필요하다. 연주자는 남아도는 데 매니저(기획자)가 부족하다.
▲백인 중산층뿐만 아니라 소수 유색 인종까지 관객으로 끌어들이려면 공공 예술기관에서 조기 예술교육이 필수적이다.
▲음반 산업의 붕괴로 매일 벌어지고 있는 공연 예술의 기록 보존이 필요하다고 처방했다.
우리 나라의 공연 예술계 역시 그의 처방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아름다움과 진실, 창조를 추구하는 예술극장들은 오락과 환락의 상업술로 무장된 극장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상한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 그와 함께 참다운 `극장형 사회`를 가꾸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김명곤(국립극장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