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과 정신에 대한 현대의학과 인문학의 서로 다른 해설들
자유는 인간을 설레게 한다.
해방에 대한 갈구, 자유에 대한 욕망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가 들어간 책의 제목은 사람들의 손을 잡아당긴다.
이 책을 쓴 이는 의사다. 그러나 의사들이 으레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 대중용으로 한두 권씩 쓴 일반적인 건강관련 도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료현장과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의료현장과 사회에서 포착된 여러 사례들, 가령 요통에 대한 정형외과 의사들과 독일철학자 가다머의 논쟁, 우울증 의처증을 바라보는 정신과 의사와 인문학자의 관점 차이, 비만에 대한 소수자 운동가와 의사들의 견해 차이 등에서 다소 심각한 주제인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와 소통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고담준론으로 빠지기 쉬운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대해, 임상의사 특유의 경험적이며 구체적인 예증으로 까다로운 문제를 더 느낌 있게 다가가게 해준다.
이 책은 이미 고전이 된 스노의 ‘두 문화]와 수년 전 지식계를 뜨겁게 달군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의 문제의식을 더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생물학자인 윌슨의 ‘통섭’에 대해서, 생물학이 통섭을 빙자해 인문학 영역을 침범하고, 인문학을 없애려 한다는 비난이 많았다. 과학자가 쓴 ‘소통’관련 책에 적개심을 갖고 있는 인문학자들은 적어도 이 책에 대해서는 다소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에 대해서다. 그 둘 간의 소통을 위한 많은 말들이 있어왔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았다.
그 힘든 이유가 단순히 서로의 오해이거나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통을 당위로만 받아들여 성급하게 섞으려 하지 말고, 우선 왜 소통이 불가능한지를 먼저 끝까지 탐구해보자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각각의 학문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고, 거기에는 서로 간에 화해 불가능한 심연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소통불가능의 근본 원인을 철학적으로 풀어내려 한다. 인문학과 과학의 ‘자유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를 주요 논지로 삼는다. 다른 학문이나 의견들 간의 소통이 당연히 해야 할 어떤 것으로서 요청되고, 그러한 경향이 주된 트렌드인 요즘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색다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주제는 다소 흥미롭다.
인문학과 과학이 소통 불가능한 구조를 가졌고, 거기에서 그친다면 이것은 반쪽 짜리 책 일 것이다. 공정하고 냉정한 심판만 있고, 흥미로운 시합내용은 없는 축구 시합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결론 부분에서 과학의 입장에서 소통의 구조적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이란 어쩌면 사실과 가치의 화해일 것이다. 객관적 사실로서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과학과 가치를 주장하는 인문학의 화해를 저자는 묘하게도 각각의 학문의 시간단위가 다름을 통해 현실 사회에서 두 학문이 같이 놓여질 수 있음을 논하는 점도 색다르다.
또 최종 결론에서 라깡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는 기존의 인문적 글쓰기를 하는 생물학자들과 다른 입장에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 하다.
학문 간의 융합과 소통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색다른 방식으로 신선한 실마리를 줄 것이다. /서울경제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