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은행장은 줏대를 가져라(사설)

은행장의 위치가 추풍낙엽처럼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모든 은행들이 주주총회를 열어 새 경영진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은행산업의 중요성과 경영자의 위치를 재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은행장이 흔들리면 은행이 흔들리고 은행이 흔들리면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 유능한 은행장 한사람을 길러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따져보더라도 은행장을 함부로 흔들어대서는 안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김영삼정부들어 16명의 은행장들이 중도하차했고 그중 이번 한보사건 구속자 2명을 포함, 모두 6명이 구속됐다. 은행감독원은 관련 은행들에 대한 특별검사에서 임직원들의 직무태만 사례를 무더기로 적발해 별도의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은행비리의 원인은 권력의 압력에 있다. 은행경영을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차단시키는 일이 절실하다. 그 방법을 놓고 금융개혁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장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도록하는 일이다. ○재벌이 주인되면 주객전도 은행에 주인이 없어 관과 정치권의 개입을 초래했다며 주인 찾아주기를 시급한 처방으로 삼고 있는듯 하다. 이는 당연한 일이지만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주는 일은 간단치 않다. 수천억원의 자본금을 투자할 수 있는 주인이 쉽게 나설 수 없을 것이므로 재벌에 맡기는 방법이 손쉬울 것 같지만 재벌이 은행을 맡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은행의 큰 고객인 재벌이 은행의 주인이 되면 주객이 전도된다. 그 경우 은행장은 손님의 눈치를 보느라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재벌이 아닌 개인에게 맡기자니 거대자본을 동원하는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데 누가 주인이 되든 사회가 은행장을 존중하고 은행장은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소신경영을 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은행은 본질적으로 장사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은행장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은행장이 정치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권력의 지배를 받는다. 은행들이 한보태풍에 휩싸여 있는 틈에 연임이나 선임운동을 벌이는 임원이 있다는 보도는 아직도 은행경영자들이 정신을 못차렸다는 증거다. ○정치하는 은행장 도태돼야 물론 주주들의 간곡한 권유로 3연임을 수락한 은행장이 있는가 하면 후진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3연임을 고사한 은행장이 있어 훈훈한 화제를 낳기도 했다. 로비를 하지 않더라도 경영을 잘하면 연임이 돼야 하고 로비에 능한 사람일수록 사고 낼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은행은 단순히 장사만 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업에 피와 같은 돈을 수혈하는 공공성을 갖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은행의 공공적 기능이 특정인의 간섭으로 훼손돼서는 안된다. ○자리 걸고 거부하는 용기를 한보사건 관련은행들은 따지고 보면 수혈을 잘못한 사건이다. 의사가 수혈을 할때 반드시 혈액형을 점검하듯 은행들도 자금공급에 앞서 반드시 기업의 경제성을 점검해야 한다. 은행은 기업의 투자에 대한 제2의 심사자인 것이다. 한보사건의 경우 관련 은행들은 이 기능을 하지 않았다. 은행장들은 한결같이 국가기간산업이기 때문에 대출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정책당국자가 할 말이지 은행장이 할 말은 아니다. 설령 정책당국에서 그렇게 말하며 대출압력을 가하더라도 은행장은 반드시 경영인으로 투자가치를 점검해야 했다. 은행장은 아무리 기간산업이 중요하더라도 채산성과 투자가치를 검토해 적합치 못하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관리나 정치인이 무리하게 외압을 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리를 걸고라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보사건의 은행장들은 정치권의 도움으로 은행장이 된뒤 그것이 족쇄가 돼 정치권의 대출압력을 거절하지 못했고, 한보의 경영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공범관계에 빠져 있었다. 이같은 비리구조는 오랜 세월속에서 자리를 잡은 것이어서 하루아침에 불식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은행들의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들은 유능하고 소신있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고 사회는 그들을 신용의 상징으로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은행장 인사를 좌지우지해 신용질서를 어지럽힌 관리나 정치인들을 응징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또한 강화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