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고] 과학발전 `한국적 모델' 만들자

「한국 과학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 「한국은 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가」등 한국 과학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한국의 과학을 미국이나 유럽의 과학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한국 과학의 옳은 평가가 아니다. 과학 역시 각 나라마다 특징을 가지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비교하기 보다는 한국 과학의 변천과정과 특징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과학수준에서 우리나라 과학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격으로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과학은 그 동안 선진국의 과학을 좇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을, 가끔은 일본 및 유럽의 과학을 본받으려고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과학은 선진국의 과학을 닮았는가. 그렇지 않다. 과학지식이나 방법은 어느 곳에서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과학의 응용이나 제도는 다르다. 오히려 과학의 응용 및 제도는 해당국가의 사회적 특징들과 잘 조화를 이룰수록 장점을 발휘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은 그 동안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국적」이라 부를 만한 여러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침체와 도약」이라는 상반된 근대과학의 역사를 지닌 것이다. 17세기부터 1950년대 초반의 긴 근대화 침체기의 경우, 무엇보다 외부에서 전달되는 근대과학의 경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근대화에 관해 어떤 자극도 받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근대과학은 오랫동안 낯선 문명으로 남았다. 내부적으로도 서구 근대과학의 필요성이 강하게 생겨나지 않았다. 뒤늦게 19세기말부터 그 기운이 일어났지만 곧 일제 식민지화 정책, 좌·우파의 갈등 등과 같은 극심한 사회 혼란에 휘말려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1950년대 중반부터 현대까지의 빠른 근대과학 도약기의 경우는 전쟁을 계기로 일반인 사이에 근대화가 절실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다른 국가에서 선진과학을 빠르게 흡수하게 되었다. 정부주도에 의한 과학기술과 경제와의 연합은 과학기술을 집중해서 발전시킨 강한 사회적 힘이 되었다. 이 기간동안에 과학발전의 주도 집단은 민간-정부-기업의 순으로 순차적인 변천을 거쳐 왔다. 결국 과학기술 발전을 향한 전 국가적 역량의 결집은 단기간 내에 한국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국 과학의 또 다른 특징은 「정치와 과학의 분리」다. 과학자는 정치권력 집단의 형성과는 철처하게 분리됐다. 이는 그 뿌리가 신분의 차이에 있다. 귀족 출신이나 높은 신분을 가진 이들은 정계에 진출했다. 반면 과학을 했던 사람들은 서방세계에 관심을 가진 평민이거나 식민지시기에 첨예했던 사회·정치문제에 대한 접근을 꺼리는 이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과학과 정치간에 간극이 크게 벌어졌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기능적, 부수적 존재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같은 과학에 대한 과소평가는 오히려 득이 됐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극심했던 정치혼란 및 갈등으로부터 한국 과학은 안정된 위치와 자율성을 지킬 수 있었다. 또한 「기술을 위한 과학」이라는 것도 한국 과학의 특징이다. 과학과 기술이 구분되어 이해되기 보다는 「과학기술」로 불리며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에 따라 국가의 전략산업과 관련되어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된 과학분야만 정부와 산업으로부터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중심의 과학발전」도 남다르다. 정부가 과학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갖가지 정책수단을 이용해 탁월성 위주의 교육 및 연구체제를 마련하고 지원책을 폈다. 중요한 단계에서는 항상 우수한 과학기관을 새로 세워 그것이 과학발전을 이끌게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과학기술처(MO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등과학원(KIAS) 등이 그 예이다. 끝으로 「유학생들의 남다른 애국심」을 손꼽을 수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외국, 특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어 두뇌 유출의 문제를 일으켰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상당수가 중요할 때마다 한국에 돌아와 한국과학의 도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현재 한국은 선진국으로 진입을 모색하는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과학기술에서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까지의 응용연구 위주의 발전전략은 이제 독창성과 잠재성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 추세에 따라 과학기술계에서도 연구기회 및 지원을 더욱 공평하게 처리하는 균등성의 원리가 강조된다. 기관이나 집단위주의 투자보다 인물중심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이제 한국이 과학기술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을 뒤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는 상이한 발전모델을 창출할 때만 가능하다. 과학발전에도 한국적 독창성을 지닌 「한국적 모델」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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