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베이스 예산은 모든 예산항목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지출의 타당성과 정책 우선순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세금이 이미 투입돼 진행 중인 사업이라도 중도 폐기되는 극단적 사례까지 나올 수 있다.
포럼이 제로베이스 예산을 주문한 것은 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으로 위기에 처한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고언이다.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예산 부풀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정치권의 행태를 본다면 이번 지적은 백번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은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지만 저성장 추세와 복지비용 증가로 급속히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천문학적인 통일비용도 언젠가는 치러야 할 미래의 부담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남유럽 같은 재정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지만 정치권에는 그야말로 소 귀에 경읽기다. 국가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표만 긁어 모으려는 구태의 극치를 보이는 게 작금의 정치권이다.
내년 예산심의에 들어간 국회는 벌써부터 정부안(342조원)에서 12조원의 증액을 요구했다. 각 상임위 차원의 증액 요구 규모가 이 정도다. 다음 단계인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로 넘어가면 이른바 끼워넣기식 '쪽지예산'이 기승을 부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재정규율이 무너지고 있다는 포럼 공동대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개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규율이 허물어지면 나라살림이 거덜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번에 포럼이 제시한 예산개혁의 제도적 장치 가운데는 공론화를 거쳐 실행에 옮길 만한 사안들도 있다. 예산개혁에 각계 전문가를 끌어들여 국민참여형으로 진행하라는 제안은 이해관계자의 반발과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재정지출이 수반되는 법률의 국회 예결위 사전심의라든지 5년 단위의 재정적자와 국채발행 한도 설정 같은 것들도 정책대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