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4월 04일] 법치주의의 근간 '증거주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요즘처럼 특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특검을 단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선거전략 중 하나로 이해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 도입된 배경ㆍ과정ㆍ결과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하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도입된 특검의 사례를 보면 시간과 국력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비정치인이 특검 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정치적 희생양이 돼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보다 법관이 내린 판결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낸 바 있다. 그 이유는 법관이 국회의원보다는 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업별 신뢰도를 측정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항상 법관이 정치인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이율배반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즉 검찰이 수사 중이던 삼성비자금 의혹사건을 정치인들이 특검이라는 이름으로 재수사시키고 있다. 그것도 지난 1월10일 총선을 겨냥해 시작된 특검은 2차 연장을 거쳐 총선이 끝난 다음달 23일까지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가관은 증거도 불확실한 범죄사실을 단지 내부고발자가 폭로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단발성 폭로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김용철 변호사 말대로 “증거가 뭐 필요해. 내가 증거인데”라는 식의 폭로에 검찰은 물론 국회까지 들썩이는 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현주소이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특검이 소영웅주의에 빠져있는 돈키호테 또는 정의를 가장한 불순한 세력의 정치적 시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검이 정치적 시녀로 전락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법익이 정치권력의 이기적 칼날 아래 무참히 무너져가는 비참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전 삼성 임원이던 김 변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삼성이 했다고 고발한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이 됐다. 세간에서 말하듯 김 변호사는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보다는 오히려 변호사법을 위반하고 내부기밀을 폭로한 범법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우리나라에 과연 법치주의는 현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이뤄진 정권교체는 아마도 법치주의를 실현하라는 국민들의 보다 큰 열망이 이끌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앞으로라도 삼성 특검은 보다 법치주의의 실현 관점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삼성 특검 출범 당시에 제기됐던 의혹에 대한 수사로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길이 삼성 특검이 정치적으로 더 이상 이용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한 증거가 존재하는 사안으로 한정해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법치주의 실현을 의미함과 동시에 피의자의 법익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속한 시일 내에 특검을 종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삼성은 특검으로 한해 결산기 중 반 정도를 수사를 받는데 주력했다. 이는 사업자가 송사로 본업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볼 때 우리 경제가 송사로 인해 회복이 더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삼성 특검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은 법치주의로부터 법익을 보호받는 것을 스스로 포기해야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의 대변자가 되고자 한다면 국가 경제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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