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게임에 과몰입된 여성가족부


"직원 여러분, 드디어 주말이 왔습니다. 이번주 말에는 일 대신에 가급적 가족과 가여생활을 보내도록 합시다."


얼마 전 국내 게임 개발업체의 사내 게시판에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직원들은 '가여생활'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연이어 강도 높은 게임 규제 정책을 내놓는 여성가족부를 빗대 '여가'를 '가여'로 바꿨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요즘 국내 게임 개발자들은 여가라는 말만 들어도 한숨이 나온다. 지난 10일 여가부는 다음달 20일까지 모바일 게임에 대해 셧다운제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이미 온라인 게임에는 강제적으로 청소년들의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를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은 자정부터 다음달 오전까지 모바일 게임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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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는 게임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규제 여부를 우선 판단하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공정한 평가를 통해 셧다운제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지 무조건 모바일 게임에 셧다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게임 업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바일 게임에도 정부 규제가 적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여가부는 지난달 셧다운제 관련 평가 계획안을 공개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평가문항으로 넣은 항목에 다른 사람들과 경쟁심을 유발하거나 이용자에게 뿌듯한 느낌을 주는 게임은 셧다운제 적용 대상이라고 못 박아 논란을 키웠다. 무조건 게임이 유해하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이쯤 되면 유독 정권 말기에 불어닥친 여가부의 '게임 탄압'에 다른 정치적인 배경이 있지 않을까라는 일각의 의심도 무리는 아니다. 전 정권에서 군 가산점 폐지를 이끌어내며 '여성'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여가부는 이번에는 '가족'를 핑계로 게임 규제를 들고 나왔다. 차기 정권에서 부처 존폐론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게임 규제는 여가부 무용론을 잠재우기에 괜찮은 소재다. 이유야 어찌 됐든 게임에 빠진 우리 청소년을 구하겠다며 나선 여가부가 정작 게임에 과몰입됐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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